아담하게 모여 앉은 주택가 앞쪽. 일반 주택 같은 건물의 초록빛 마당이 환경운동연합이다. 가지런히 놓인 손님용 슬리퍼, 어수선한 실내는 어딘지 모르게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나무로 된 반들반들한 마루 바닥은 시골집 툇마루를 떠올리게 했다.

동그란 얼굴에 큰 안경, 학생같은 이미지의 반핵운동 담당간사 한성숙(26)씨. '반핵운동'이라는 단어에서 절로 연상되는 살벌하고 음울한 느낌이 여지없이 조각나는 순간이다. "저 92학번이에요, 아직 젊어요"

핵은 이제 그만!

원자력공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고리 핵발전소 주변에서 무뇌아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한창 나오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핵기술의 위험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그래서 저라도 나서면 뭔가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학생 운동에 열심이던 그는 졸업을 하고서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환경과 에너지 분야를 택했고, 1년간의 자원활동 후 정식으로 환경운동연합에 들어왔다. 그의 직책은 반핵 담당 특별위원회 간사. 환경운동연합 반핵 홈페이지(http://antinuke.kfem.or.kr)를 운영한다.

홈페이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울산 핵발전소 건설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이 그다지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다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사실 환경은 가장 넓은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다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가정에서는 분리 수거, 재활용 열심히 하고 기업들도 환경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반핵 문제는 다가서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친근감이 없고 멀게 느껴지죠. 그래서 반핵 운동이 좀 약해져 있긴 해요."

최근의 관심사는 지난 9월 27일 일본에 입항한 두 척의 핵 연료 수송선. "이번에 일본으로 들어온, 영국과 프랑스에서 재처리한 핵원료 수송에 대해서 환경 단체와 여러 나라들이 걱정한 게 세 가지 있어요. 오다가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약간의 조작만으로 핵무기가 될 수 있는 원료를 테러 집단이 탈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리고 핵확산의 우려지요. 앞의 두 가지는 가능성만을 따졌던 거고 일단은 일본까지 무사히 들어왔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마지막이에요. 일본은 지금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우선 기폭장치를 만들 수 있고, 핵폭탄을 나를 탄도 미사일도 만들 수 있죠. 그리고 1.5톤의 플루토늄."

대외적으로 일본은 이 핵원료는 에너지로 쓰기 위한 것이다, 에너지자원 빈국인 일본은 원자력 에너지밖에 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도 이미 충분해요. 하지만 이번 수송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일본과 영국, 프랑스는 재계약을 하기로 되어 있죠. 앞으로 80번 정도 더 올 거예요."

"지난 93년에도 핵원료 수송이 있었는데, 그 때는 배가 지나는 어떤 나라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들여왔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야당 쪽에서 반대 성명을 내는 정도였죠."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수송선은 동해를 통해 곧바로 일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태평양 쪽으로 빙 돌아가야 했다. "이 문제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례 회의에서도 정식 의제로 채택도 됐었고, 일본 대사관에서도 동해를 통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어요. 우리가 일본의 플루토늄 수송 계획을 막을 수도 없고, 일본의 핵정책을 바꾸기도 역부족이죠. 일단의 목표는 이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본의 핵발전소는 대개 동해 쪽에 설치되어 있어서 언제 동해로 들어올지 몰라요. 끊임없이 감시해야죠."

그는 사람들이 환경 단체의 주장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덧붙였다. "핵을 반대하지만 무조건 핵발전소를 폐쇄하자, 핵에너지를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죠. 핵에너지는 이것으로 충분하니, 대체 에너지에 좀더 투자하고 거기에 맞게 사회 체계를 바꿔 나가자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핵발전소도 더이상 짓지 않고 있어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대체 에너지, 즉 재생이 가능한 에너지 사용에 대한 흔한 반박 중 하나. 바람이 매일 부는 것도 아니고 태양이 매일 내리쬐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전력을 댈 수 있는가.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한 도시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면서 그 대안으로 태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를 제시했어요. 지금은 실제로 발전소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죠. 핵에너지는 집중적으로 전력을 끌어와야 하지만 재생가능 에너지는 작은 단위마다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그런 건 운동으로 가능해지는 거죠."

"유럽과 일본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일본의 경우에는 직접 솔라셀을 조립해서 지붕에 깔기도 해요. 또 미국 캘리포니아의 수도 세크라멘토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 비율이 20%예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에너지 비율과 비슷하죠. 태양과 바람을 이용해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공원에는 나무를 많이 심고 건물 벽도 흰색으로 칠하고, 담장에는 덩굴을 늘어뜨려서 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해요. 아예 마을 하나를 완전히 바꿔버렸어요."

핵기술의 가장 위험한 문제는 인간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소규모 에너지의 경우 기술 변화가 유연하고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반면, 거대한 핵발전소와 핵에너지는 인간이 쉽게 다루기 어렵다. 결국 기술이 인간을 억압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핵사제단이라고 하죠. 핵전문가 그룹과 핵에 찬성하는 정치가 그룹이 일반인을 통제하게 돼요. 비밀주의가 되고 권위주의가 되는 거죠. 무서운 에너지를 통제하기 위해서 생겨난 권력이 일반 시민들까지 통제하게 되는 거예요."

"지금 에너지 소비 상황으로 재생가능 에너지는 곤란해요.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꼭 제도가 먼저냐 사고방식이 먼저냐 하는 질문이 나오죠." 심심치 않게 들어온 질문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아니면 개개인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할까? 대답은 기대에 비해 너무도 쉽게 나왔다. "변증법적으로 바뀌어 가야죠." 양손을 엇갈리며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차온다. 그의 순수함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조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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