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로운 이름의 정당이 등장할 거라 한다.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된지 4년만이다. 자동차 회사가 신차의 이름을 출시 때마다 바꾸듯이 한국의 정당도 이름을 바꾼다. 민주적 제도가 도입된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많은 정당들이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사라졌다. 

대한여자국민당을 아시나요

한국 최초의 정당은 뭘까? 이름도 생소한 대한여자국민당이다. 1945년 8월 18일 창당되어 9년이나 유지됐다. 군소정당이었던 당이 9년 동안 간판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창당한 한국독립당은 당을 이끌던 김구가 피살되면서 3년 10개월 만에 사라졌다. 정당의 대표가 피살되면서 사라진 정당은 또 있다. 여운형이 이끌던 노동인민당. 47년에 2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남조선노동당은 불법화 선고를 받고 해산했다. 좌파 성향의 정당들은 이렇게 사라졌다. 이후 한국정치에서 진보정당을 보기란 참 어렵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정당은 민주공화당이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군부세력이 창당한 정당이다. 17년 5개월 동안 정치를 주름잡았다. 그 기간 동안 집권당의 자리를 한번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80년 10.26을 계기로 해산된다. 단지 20 여일 동안만 존재했던 정당도 있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한국기민당과 통일민족당. 하루를 차이로 창당했다 같은 날 사라졌다. 81년 11대 총선이 치뤄지던 3월에 창당했다가 총선이 끝나고 3일 뒤인 3월 28일 해산했다.

한국은 의회제도가 도입된 이래 무수히 많은 정당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등록된 주요 정당의 수는 무려 87개다. 20년 이상 계속된 정당은 하나도 없다. 열 다섯 번의 총선을 거쳐 여당과 제 1야당의 위치에 오른 정당 수는 무려 18개. 이들의 평균 수명은 6년이 채 안된다.

초기의 정치는 정당보다 인물 위주였다. 2대국회에서 210개의 총 의석 중 무소속 의원들이 126석을 차지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당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3대 총선부터 15대까지 적어도 하나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38개나 된다. 가장 많은 의석 수를 차지한 정당은 민주자유당이다. 민주자유당은 90년 2월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을 합쳐 생겨났다. 13대 국회 초기에는 이 세 당과 평화민주당이 골고루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민자당은 거대 여당이 되기 위해 합당을 추진했다.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합당의 대가로 다음 대통령 후보를 약속받았다. 이때 민주자유당이 차지한 의석은 297개의 의석 중 216개. 가히 일당체제라 할 만하다.

한번에 15개의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그동안 한국 정치에 등장했던 정당들을 시대 순으로 쭉 써놓고 보면 두 군데에서 정당이 모조리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바로 1961년과 1980년.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바로 5.16과 10.26이다. 군부세력은 헌법을 개정해 기존 정당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20년의 시차가 있지만 참 비슷하다. 그리고 정당들이 한꺼번에 생겨난다. 6대 총선이 있던 1963년.  5월 10일 창당된 민주공화당을 시작으로 10월까지 무려 14개의 정당이 창당된다. 가장 많은 정당이 생겨난 때는 이 때가 아니다. 바로 1981년. 그 해 1월부터 3월 까지 생겨난 정당 수는 15개. 이들 정당들은 몇을 제외하고는 1년이 못 되어 해산했다. 

서울올림픽이 치뤄졌던 1988년. 그 해 봄 총선에서는 14개의 당이 입후보자를 냈다. '우리정의당', '민중의당', '한겨레민주당' 등 이름도 낯선 6개의 정당이 총선에 즈음하여 창당했다가 국회의석을 획득하지 못해 같은 날 문을 닫는다. 선거 때 창당했다 사라지는 건 이들 군소정당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신한민주당은 12대 총선 2달 전에 창당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이끌던 정당이다. 이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단숨에 제 1야당의 위치에 오른다. 그러나 김대중과 김영삼의 결별로 사라졌다. 김대중은 평화민주당을 김영삼은 통일민주당을 창당, 각각 호남과 영남에서 지지를 받는다.

박정희는 공화당으로 세 번 출마했고, 김대중은 4번 모두 출마 정당이 다르다. 71년에는 신민당으로, 87년에는 평화민주당 그리고 92년에는 민주당이었다. 김영삼은 2번 출마했는데, 처음 87년에는 통일민주당, 92년에는 민주자유당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합당과 신당 창당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신당을 창당한다

내년에도 새로운 정당이 나타난다고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당명을 바꾼지 얼마 안되는 한나라당도 이미지 쇄신을 위해 이름 바꾸는 걸 고려 중이라고 한다. 한국 정치 연표에서 정당 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학계에서는 한국의 정당을 '제도화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보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이합집산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행태를 보며 '이식된 민주주의의'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차남희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느날 눈을 떠보니 주어진 것'과 같다. 정치인들과 국민들 모두 민주적 자질을 훈련받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의 의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변화하지 않고 있는 건 정치 뿐인데, 이를 국민들이 곱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90년 삼당 합당 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민자당은 의외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인위적인 정당통합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가는 부산하다. 정치인들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좋을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언론은 정치인들의 입에서 당개편에 관한 메시지가 흘러나올까 귀를 쫑긋 세운다. 매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신당과 창당. 평범한 시민인 김익순씨(회사원, 30)는 "이름을 바꾸고 새로 시작해도 그게 그 사람인데 달라질 게 뭐 있나요. 그냥 있는 대로 더 잘하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김수진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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