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바람을 맞아 츄리닝은 새롭게 떠오르는 패션 트렌드가 되었다. 더 이상 뺄 살이 없어 뵈는 그녀들은 섹시함을 부각시키는 벨벳 츄리닝을 입고 땀방울을 흘린다. 구질구질함의 대명사였던 츄리닝의 반란. 그러나 나는 시대의 흐름에 역류한다. 후진 츄리닝을 예찬한다. 무릎이 툭 튀어나오고 닳을대로 닳아 반질반질해진, 발목을 강력하게 조여주는 내 츄리닝! 약속 없는 주말, 나는 내 츄리닝과 혼연일체되어 방바닥을 구른다. 그러다 허무와 외로움이 밀려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스포츠 투데이 싸이트에 들어가 만화 <츄리닝>을 찾는다. 자, 이제 미친 듯이 웃어제낄 시간이다. 

대세는 츄리닝이다

만화 <츄리닝>이 ‘개그’ 좀 안다는 네티즌들 사이에 대세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대학생 김유리(22)씨 역시 <츄리닝> 즐겨본다. 우연히 스포츠 신문에서 <츄리닝>을 알게 된 후로 매일 스포츠 투데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챙겨본다. “제 친구들은 <츄리닝>을 자기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퍼 놓아요. ‘너 어제 츄리닝 봤어?’가 친구들 사이의 첫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니까요.”

<츄리닝>은 인기리에 막을 내렸던 김미영 작가의 <기생충>의 후발주자로 시작했다. 기생충의 인기가 워낙 대단했기에 처음에는 욕을 먹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채찍질에 이상신, 국중록 작가는 더 노력했고 <츄리닝>만의 독특한 매력에 네티즌들의 원성은 쏙 들어갔다.

소리 없이, 그러나 강하게 인기를 끌던 만화 <츄리닝>은 작년 10월 초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오프라인 인기몰이에도 나섰다. 폭발적인 판매량을 끌어내진 못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기자는 동네 책대여점에서 손 때 묻어 귀퉁이가 닳아버린 <츄리닝> 단행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화가들을 배고프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느끼는 동시에, <츄리닝>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츄리닝> 탄생비화

이상신(30), 국중록(29)씨는 세종대학교 애니매이션학과 선후배 사이다. 96학번인 이상신씨는 9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청산하고 2004년 졸업했고, 97학번 국중록씨도 올해로 10년째의 학교 생활을 마칠 예정이다. 오래도록 같은 과 학생이었지만 서로 이름도, 얼굴도 잘 몰랐다고. 그러던 중 만화 <아색기가>의 양영순 작가가 이상신씨에게 인터넷 만화를 그려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혼자 하기가 좀 겁나더라고요. 그러다 술자리에서 만화가 황미나씨 문하생으로 있던 중록이를 만났고 바로 의기투합했죠.”

<츄리닝>은 스토리와 그림 작업이 따로 이루어진다. 이상신씨가 스토리와 콘티를 생각해내고 국중록씨가 바톤을 이어받아 그림 작업을 한다. “보통 저녁부터 이야기를 생각하기 시작해요. 주로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장소는 저희학교(세종대) 운동장이죠. 거기서 꼬박 밤을 새기도 하죠.” 새벽이슬을 머금고 갓 태어난 이야기는 아침에 일어난 국중록씨에게 넘겨진다. 마감은 오후 4시. 처음에는 반나절 정도 걸리던 그림 작업이 이제는 6시간이면 완성된단다. 2003년 9월 3일에 시작한 <츄리닝>은 현재 500화 중반을 향해간다. 마감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작가를 닮은 만화, 만화를 닮은 작가

<츄리닝>은 20대 젊은이들과 관련된 소재를 만화로 다룬다. 소개팅, 술자리, 군대, 엠티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만화로 그려지니 독자들은 공감하고 열광한다.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 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나쁘죠. 근데 못생긴 제가 현실에서 다 느끼는 거라서요. 욕을 먹어도 솔직하게 나가고 싶었어요.” 실제로 츄리닝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는 이상신씨가 자신을 모델로 해 만든 것이다.

사실 인터뷰 진행이 어려웠다. 두 사람 다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신비감 조성중일까? 대놓고 물어봤다. “어떤 성격들이세요?” 이상신 작가는 ‘재밌는데 우울한 사람’, 국중록 작가는 ‘산만하고 상냥한 사람’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덧붙이는 얘기를 통해 이상신 작가는 학교 교수님이나 동기들보다 수위아저씨와 친하고, 국중록 작가의 취미가 ‘맥주 마시며 혼자 영화보기’ 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세련된 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쿨한 오라를 풍겼고, 대놓고 웃기진 않았지만 감각적인 개그를 툭툭 내뱉었다.

사랑한다면 lovetoon 으로 만화보러 오세요

스포츠 투데이 사이트의 <츄리닝> 만화 밑에는 이상신, 국중록 두 작가의 손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두 손에는 www.lovetoon.co.kr 라는 사이트 주소가 적혀있다. ‘사랑과 나눔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이트 ‘럽툰’ 주소다. 럽툰은 지난 8월, 만화를 통한 자선 기부를 도모하기 위해 오픈했다. <츄리닝>을 비롯한 인터넷 만화 작가들은 2003년부터 <러브쿤서툰>이라는 파티 형식의 콘서트를 주최해왔다. 만화가들의 장기를 살린 공연과 함께 만화가와 독자들이 어우러져 파티를 즐기고 수익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왔다. <러브쿤서툰>의 취지를 살려 ‘럽툰’이 탄생했다.

럽툰소속 작가들은 우리 주변의 소외받는 이웃을 대상으로 한 만화를 그린다. 네티즌은 인터넷 소액결제를 통해 자선, 기부를 할 수 있고 단지 만화를 보기만 해도 기부가 가능하다. 기부를 통해 만화가들과 함께 오프라인 봉사활동을 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국중록씨는 “저희 만화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아서 동참했어요.” 라고 말했다.   

츄리닝. 좋아, 가는 거야!

벌써 <츄리닝>연재가 시작한지도 2년이 넘었다. 두 작가는 <츄리닝>시리즈가 완결되면 각자 새로운 만화 스타일을 시도하고 싶단다. “이현세 선배님이나 허영만 선배님의 만화같이 사실에 기초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이런 두 사람이 뽑는 최고의 만화는 슬램덩크. 그러나 아직 두 작가의 머릿속은 <츄리닝> 생각으로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재미있는 츄리닝을 물었다. 이상신씨는 <탈옥>편을, 국중록씨는 <도박>편을 꼽았다. 자신들의 만화가 재미없어서 고민이라는 욕심 많은 이상신, 국중록 만화가. 욕심 많은 그들의 만화를 계속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참살이:  외국어 `웰빙(Well-being)'을 순 우리말로 바꾼 낱말.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