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아매리가 놈들이 말이지. 한강에다가 독극물을 풀었다지 뭔가."

"아니 뭐라고? 직한이 자네 말이 정말 사실인가?"

"우리 녹색파(綠色派)의 첩자들이 직접 알아낸 사실일세.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그 콧대 높은 아매리가 놈들도 아무 말 못하겠지."

소시민씨가 퇴근 길에 오랜 지우 정직한(鄭直寒)씨와 대포가(大飽家)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들은 소식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주모아주마(酒母雅主魔)에게 돈을 지불하고 나오면서 소시민씨는 봉록을 좀더 아껴서라도 정수기를 한 대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매리가군이 지난 2월에 용산골 기지 영안실에서 주검 방부처리용 약품인 '포르말린' 을 하수구에 몰래 버려 한강으로 흘려 보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일회성 실수가 아니며, 이에 대한 아매리가군의 명확한 규명과 정중한 사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녹색파의 회견은 전시민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방류 당시의 사진을 비롯, 아매리가 군무원의 진술서 등 결정적 물증까지 제시한 녹색파의 주장 앞에서 아매리가군은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이 일을 지시한 용산골 아매리가군 기지의 영안소 부책임자 맥퍼렁은 사태가 예상외로 커져가자 눈앞이 아찔함을 느꼈다. 포르말린은 폐기 시설이 있는 니혼의 오키나와 아매리가군 기지로 보내 처리했어야 하지만, 간단하게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빌어먹을 놈이 문제를 제기할 줄 누가 알았나. 역시 조선계 아매리가인이라고 자국을 먼저 챙기는군.'

자신이 포르말린을 하수구에 버리라고 지시하자, 유해화학물질을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는 당신 때문에 우리의 식수원이 오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를 했던 약품관리 근무자가 기억났다. 상명하복인 군대의 원리 때문에 그 근무자는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령부에 보고한 것에 이어 녹색파에게까지 알렸는 모양이다.

'아매리가에서는 1980년대 말에 포르말린이 발암물질로 지정됐다고 하더라도 조선은 상관 없지 않나? 그까짓 포르말린 몇 병 버린 것 가지고 고생 좀 하게 생겼군.'

 "가뜩이나 아매리가군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은데 큰일났군요. 빨리 처리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조선에 주둔하면서 지난 67년에 맺은 소파(小破) 협정에 따르면 환경 관련 조항이 전무합니다. 그리고 '시설과 기지를 반환할 때 미군은 제공 당시 상태로 원상 회복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92년 독일에는 아매리가군 주둔 기지 정화 비용으로 30억 달러나 지불했었지만, 같은 해 필리핀 정부가 미군 기지의 폐기물 정화 비용을 요구한 것은 증거가 없다고 묵살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힘 없는 나라는 돈 들이지 않고도 끝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대강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적당히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합시다. 오늘 회의내용은 S1급으로 극비 처리하겠습니다."

독극물 방류로 아매리가군에 대한 여론이 안좋게 돌아가자, 긴급히 장성들을 소집한 회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하게 한다는 그들만의 논리에서 이번 사건은 회의 거리도 아닌 것이었다.

 "포름 알데히드는 단 한 차례 방류되었으며, 재발되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포름 알데히드는 폐수처리와 희석과정을 거쳤으므로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매리가군의 공보실장 대리인 여소령의 말에 춘추관의 기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포르말린은 찻숟가락 2개 분량만 먹어도 즉사할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름 알데히드병에는 희석해도 무독성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경고문까지 붙여져 있는데, 어떻게 무해하다는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그 점은 유감입니다."

기자의 질문에 소령은 아예 답변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도 대동하지 않은 공보실 최하위 장교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유감이 전부였다. 아매리가는 이번 사건이 니혼 오키나와 주둔 아매리가군의 소녀강간사건 때, 군 책임자가 일본식으로 절을 하면서 전국민에게 사죄한 것처럼 중대하게 다룰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니혼과 조선은 아매리가에게 분명 다른 의미였다.

"아니 이태원골에 왠 아매리가군 헌병들이야? 어휴~ 무시무시해서 못돌아다니겠네."

"요즘 독극물 사건부터 해서, 매향골 문제도 있고. 반미 감정이 악화되니까 자국민 보호하겠다고 헌병을 파출소에 상주시켰잖아. 우리는 독이 들어 있는 물 마셔도 되고, 자국 관광객은 털 끝 하나 다치면 안되나 보지?"

"2년 전에는 수락산 바위에다 낙서나 하더니, 그런 추태 보이는 아매리가군이나 잡아가라고 그래."

아매리가인들이 많이 찾는 시전이 있는 이태원골에 상근하는 헌병들을 조선 국민들은 멀찌감치 피해다닐 수밖에 없었다.

대제이의 집무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외무부의 각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대제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신하들의 격렬한 토론을 듣고 있었다.

"91년 1차 개정 협상 때야 변변한 카드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이번에는 끝까지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소이까?"

"3년 이하의 아매리가군 범죄에 대해서는 재판관할권을 넘겨 달라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이걸 슬쩍 여론에 흘린 게 반미감정을 자극한데다, 독극물 방류 사건까지 있으니 이번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우리 쪽이 선점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오."

"저는 오늘 아침, 소파 협상을 잘 이끌지 못하면 할복하라는 협박 서신까지 받았다오. 우리 국민들의 염원대로 이번에는 니혼 못지 않은 내용의 협상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외다."

몇 시간 동안 듣고만 있던 대제이가 조용히 눈을 떴다.

"이번 협상에서 본국의 명예를 걸고 임해주시길 바라오. 아매리가는 무조건 좋아할 나라도 아니지만, 무조건 두려워할 나라도 아니오. 경들의 신중한 선택을 기다리겠소."

대제이의 말을 경청하는 각료들의 눈에는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담겨 있었다.

아매리가군은 결국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이 폭로된 뒤 열흘이나 지난 뒤,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악화되어 가는 반미감정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조사 완료후 완전한 조사보고서를 공개하겠다' '우리에게도 크나큰 아픔이 아닐 수 없다'는 등의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방류된 독극물이 조선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은 여전하다'라는 등의 발언은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수준이 아니라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한편, 아매리가의 왕 글린돈(契躪豚)은 초강대국의 모임이라는 쥐8에서 니혼의 총리에게 여중생 추행 사건에 대해 '죄송하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송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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