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성들은 능력이나 자질의 문제가 아닌 이유로 차별받고 있습니다.” 한국여기자협회 회장 홍은희(50)씨의 인터뷰 내내 차분했던 목소리가 격양된 어조를 띠었다. 지난 6월 일간스포츠의 편집국 여기자 6명이 전원해고 됐다. “여기자는 해고를 당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해고 기준은 바로 부양가족의 여부였다. 한국여기자 협회는 곧바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1961년 처음으로 중앙일간지 여기자들이 ‘한국 여기자 클럽’을 만들었다. 클럽이었을 때는 여기자들의 친목 도모 성격이 강했다. “점차 여기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여기자의 시대적 역할에 대한 요구도 다양 해졌습니다.” 작년 4월 한국 여기자 클럽은 정식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하고 한국 여기자협회로 전환했다. 홍은희 회장은 협회로 바꾼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국여기자 협회는 여기자들의 권익. 자질 향상, 사회봉사 이 3가지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언론사에서 한 해에 여성 기자를 아예 안 뽑거나, 단 한명만 뽑던 시대는 지나갔다. 올해 조선일보 44기 수습기자 9명 중 5명이 여자였다. “현재, 언론사 입사 시에는 남녀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서배치나 연수기회, 승진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여기자들은 불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자신도 영향력 있는 일간지의 국장이지만 아직도 여성에 대한 언론사의 차별을 느끼고 있단다. 규정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차별이 존재한다. 특정 부서의 여기자 수에 상한선을 두는 것이 대표적 예다. 여기자 한 명이 줄어야 신입 여기자가 간신히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 홍 회장은 “이런 차별에 대항하고 여기자의 권위를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 여기자협회가 존재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바뀐 것보다 바꿔야 할 것이 많은 것이 현실이란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합니다

여기자 협회의 전신인 여기자 클럽에서는 1991년 처음으로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기자가 되는 길’이란 워크숍을 열었다. 이전에 어떤 언론사 기자협회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우리가 여기자로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식과 경험을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열리고 있는 이 워크숍에 홍은회 회장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워크숍에서는 여기자 협회에 소속된 각 언론사의 여기자들로부터 기자가 되기 위한 방법과, 기자가 하는 일 등을 배울 수 있다. 이 강좌를 들은 학생들은 기자가 된 후 “그때의 워크숍이 언론사 시험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강좌를 듣고 기자가 됐답니다”란 감사의 말들을 여기자협회에 전하고 있다. 홍 회장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 만족감을 느낀다”며 뿌듯해 했다.

여기자협회는 홈페이지(http://www.womanjournalist.or.kr/)를 통해 ‘사이버 멘토링의 장’이라는 일대일 멘토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신문, 방송 각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여기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질문에 협회의 기자들은 꼼꼼하게 답을 해준다. 방송기자를 준비하는 이유진(20, 대학생)씨 이렇게 써줘야 는 게시판을 통해 “이 곳을 알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라며 멘토링 시스템에 만족감을 표했다.

홍은희 회장은 작년 4월 회장에 선출된 이후, 최초로 여기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여기자 세미나’를 시행했다. 앞으로 매년 1~2회 열릴 예정이다.

여기자 협회의 가입은 까다롭다?

여기자협회 회원들은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비롯한 중앙 일간지와 KBS, MBC, SBS와 같은 방송사 등 25개에 이르는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다. 온라인 미디어 등 새롭게 등장하는 신생매체의 여기자의 회원가입여부는 이사회의 결정에 따른다. 홍 회장은 이에 대해 “난무하는 인터넷 언론의 질적인 면을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협회에는 지방신문의 여기자가 없다. 지방 신문사의 여기자들은 “아예 협회 이름을 서울여기자협회로 바꿔라”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있단다. 홍은희 회장은 “지방신문이 다양하게 존재하다보니 각각의 신문들을 평가할 객관적인 기준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며 기준이 정해지는 대로 지방신문 또한 회원사로 가입할 수 있게 할 것이란다. 덧붙여 홍 회장은 “여기자 협회는 공적 단체입니다. 한 여기자의 문제는 전체 여기자협회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자협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회원사 가입결정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홍은희 회장은 중앙일보 생활여성부장, 문화부장,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 겸 부국장으로 있다. 77년 신문사에 입사한 후, 여기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사표를 쓰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러 차별적 여건들로 인해 여기자들의 직위 분포는 치마폭처럼 아래쪽이 넓다. 남성위주의 언론사에서 여성들의 승진은 아직까지 어렵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남성언론인들이 그들의 시각만을 고집하고 여기자들의 시각을 무시해 버리는 일이 아직까지 비일비재 하다”라고 말한다. 여기자들이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은 기사에 발휘되지 못하고 꺾일 때가 많단다.

그 때 마다 홍 회장은 ‘내가 여자라서, 직업이 없더라도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함부로 직업을 버리지는 않겠다’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부당한 차별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었다. 바로 ‘스펀지요법’이다. 사회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자 할 때, 결과는 두 가지다. 상대방을 쓰러트리거나 내가 쓰러지는 것. 홍 회장은  제 3의 방법을 썼다 “상대편이 나를 공격할 때 스펀지처럼 상대의 행동을 흡수해 버렸습니다. 즉 무시해서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죠.” 또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방법은 따로 있단다. 모든 것을 다 걸고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하니까 결국은 성공하던데요.” 홍 회장은 여기자로서 이렇게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좌절 금지! 꼭 바꾸겠습니다

▲ 한국여기자협회 회장 홍은희 씨
현재 홍 회장의 가장 큰 계획은 여기자협회 부설연구소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과학적 데이터를 이용해 체계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함이다. “예를 들어 여기자들은 남성에 비해 월등한 성적으로 입사합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입사성적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홍 회장은 이런 평가가 정당하지 않단다.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연구소를 통한 객관적인 조사연구가 꼭 필요하다. 조사 결과, 여기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칠 것이고, 남성 기자들에게 의식변화가 필요하다면 불러다 교육을 시킬 것이다.

“부딪쳐서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홍 회장의 평소 철학이다. 단 시간 내에 눈에 뛰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아무런 흔적 없이 한 방울, 한 방울 바위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나중에는 구멍을 만들잖아요.” 좌절은 금물이란다. 필요한 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꿈을 잃지 않는 긍정적 사고다. “끈기 있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차별 없는 언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여기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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