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을 다니다 제출한 영화평이 교수의 호평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전문 글쟁이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작가 '양성희'. 어엿한 등단 경력도 없고, 학력은 공업 고등학교 졸업에 야간대학 졸업장이 전부이며 그저 글쓰는 것이 좋아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다는 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척박한 한국 문화 지형의 '문화 게릴라'이다.
그는 천리안 영화 동호회에서 '영화씹는 백수'와 '외계인 쥐이의 보고서'라는 타이틀로 영화와 문화 비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아이디는 '그녀의꿈'. 꽤 특이하고 인상깊은 아이디라 동호회 내에서도 유명하다.

소설 자극은 그의 첫 장편 소설이다. 소설은 풍부한 네러티브와 단순치 않은 반전등으로 고전적 재미의 기법에 충실하면서 한국의 비주류 젊은이의 냉소적 시각에서 풀어낸 리얼리티로 가득차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화 '파이트 클럽'이 보여주는  어두침침한 비관적 철학과 그 배설의 판타지가 알맞게 버무려져있는 형국이다.

영화 '파이트 클럽'을 보았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무기력한 여피 에드워드 노튼은 주류 사회가 주입시키는 소비와 포장을 통한 행복의 논리에 정면으로 맞대결을 펼치는 브래드 피트를 알게 되고,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방식의 쾌락 논리에 심취하게 된다. 브래드 피트가 설파하는 쾌락의 논리란 더 좋게 더 화려하게 더 부유하게가 아닌 자학을 통한 행복 추구의 방식이다.

그들은 흠씬 얻어터지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같은 폐가에서 살면서도 잘먹고 잘입는 사람들보다 성적으로 우월해지며남성적으로 강해진다.
주류의 질서를 테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하지만 그로인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자극은 없을 것이다.

양성희의 데뷔소설 '자극'을 관통하는 기조는 파이트 클럽이제시하는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허위욕구을 어차피 죽어가는 하루살이 인생들의 자위일뿐이라며 조소한다. 뿐만 아니다. 그들은 그 안티적 방식이 자본주의적 방식보다 더 근사하고, 더 화려할 수 있다고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그럴듯한 환상으로 묘사해낸다.
자본의 질서를 파괴해 나가며 벌어지는 안티 히어로의 에피소드들은 뻔한 권선징악의 영웅 스토리보다도 훨씬 더 자극적이다.

자극이란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남자들이다. 그의 아이디명 '그녀의꿈'은 그가 만들어낸 소설 속 주인공들의 지향점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가 탄생시킨 악의 화신으로 모순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가는 귀공자 '줄리'와 평범한 소시민 봉팔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줄리의 대척점에서 사회가 제시하는 남성적 능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놈'이 작가 양성희가 탄생시킨 그의 분신들이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꿈'이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윤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본주의적 성공 방식과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며, 자신을 이용하고 무시하는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줄 수 있는  따스한 체온이 남아있는 사나이들이다.

그에게 소설의 분위기나 내용들이 파이트 클럽을 연상시킨다고 질문을 던져보자 그는 파이트 클럽을 반 정도 보다 말았을 뿐이지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점이 너무 많아 너무 반가웠다고 말한다. 역시 자신이 꼽는 최고의 영화라고 하면서도 아직 마저 보지 못한 게으름이 창피할 뿐이라며 너털 웃음을 짓는다.

'영화 씹는 백수'라는 타이틀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내비쳤듯이 어엿한  신인작가인 그는 백수건달과 다름없는 경제고에 시달리고 있다. 소설속에서 직업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에서의 입신양명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 평범한 봉팔이에서 그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애초에 소설 한 번 잘 써서 '대박'을 쳐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글쓰기인데 1년반동안 매달려 얻은 결실이 그에게 안겨준 경제적 이익은 고작 인세 72만원.
그 72만원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자본주의의 쓴맛과 그를 소외시키는 시장의 잔인함을 확인하였고, 그에 대한 그 나름의복수는 글쓰는 걸로 밥벌어 먹고 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전문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문단의 촉망받는 기대주였던 작가 배수아도 순전히 생계를 위해 철도청 공무원으로 또한 작가로서 꽤 오랬동안 동시 상주하지 않았던가?돈을 벌자는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쓰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이 거세되버릴 것만 같아 싫단다. 아직도 소설 속 봉팔이와 아버지의 갈등은 끝이 나지 않아서 조만간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초판으로 찍은 1500부가 이제 다 나가면 재판을 찍는다며 제딴에는 여기저기 '자극 '을 홍보하기 바쁘다. 매스컴에서 평단에서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아도 자신의 제일가는 팬은 역시 자신이다. 자존심과 오기 하나로 버텨 발로 직접 뛰어다니며 출판사를 돌고 돌아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새 장편 '가족제도'에 열심이다. 역시 직설적 제목이 말해주듯 이번엔 가족 제도에 대해 실랄하게 까발리고 있는 중이다. 벌어 논 밑천이 바닥나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글만 쓸 작정이다.

소설 '자극'은 작가 양성희가 세상을 향해 직설적으로 풀어놓은 메세지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세상을 관통하는 시선의 성숙함과 이야기의 여물어짐이 아쉽긴 하지만 그의 책에는 그만의 패기와 치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남자의 시각에서 그려진,섬뜩한 허무와 위선이라는 이름의 리얼리티와 엽기적인 판타지로 버무려진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판매부수로 책의 가치가 매겨지는 대한민국의 출판계에서 적어도 연예인의 신변잡기 수필집이나 오락용 판타지 소설보다는 많이 팔려도 될 자격이 충분하다.

소설 '자극' 당신을 자극 시키기에 충분하니까.

심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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