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북한 취재를 자주 했습니다.” 2006년부터 북한 취재를 담당한 안정식 기자는 평양, 개성, 금강산, 백두산 등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특히 개성공단에 아침저녁으로 오갔다고 했다. 2021년에는 북한 보도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14회 통일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그는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SBS 목동센터로 약속 장소를 바꿀 수 있을까요?’ 인터뷰 당일 아침, 안정식 기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급하게 약속 장소를 변경했다. 언제든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기에 방송센터에서 대기해야 했다. 북한의 지속된 도발 때문이었다. 실제 그가 작성한 기사도 늘었다. 11월 1일부터 14일까지 모두 36개 기사를 작성했다. 반면 같은 기간 10월에는 24개, 9월에는 26개 기사를 출고했다. 

▲ 2022년 11월 4일, SBS 목동방송센터 인근 카페에서 만난 안정식 기자
▲ 2022년 11월 4일, SBS 목동방송센터 인근 카페에서 만난 안정식 기자

SBS 목동방송센터에서 안정식 기자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목동까지 오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카페로 장소를 옮기는 도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또렷했다.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

“북한은 왜 무기를 개발할까요? 김일성 일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권력 유지, 즉 체제 유지는 북한의 다른 모든 가치를 초월하는 우월한 가치라고 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보 위협에서 탈피해야 했다. 그래서 핵을 개발했다. “핵을 보유해야 미국이 공격하지 못해요.”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한 미국은 선제타격할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본토를 공격 받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대 군사발전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7년 9월 북한은 화성-12형 미사일을 3,700km 비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평양에서 괌까지의 거리는 3,400km이다. 괌 타격 능력을 입증했다. 미국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북한은 남한을 타격할 단거리 미사일에도 전술핵을 장착해 실전 배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2021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지시했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2022년 1월 14일과 17일, 전술핵 무기를 탑재해서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KN-23과 KN-24를 실전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단거리 미사일은 남한 타격용이에요. 그런데 왜 단거리 미사일에도 전술핵을 장착시키려 할까요. 남한을 핵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게 되면, 남한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남한은 혹시라도 있을 피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북한 공격을 저지할 수밖에 없다.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의 선제공격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전술핵을 장착한 단거리 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해 미국의 선제공격을 억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남한을 활용해 미국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이를 '삼자억지(三者抑止)'라고 표현했다.

▲ 2022년 11월 3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설명하는 안정식 기자 (출처=SBS)
▲ 2022년 11월 3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설명하는 안정식 기자 (출처=SBS)

“북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에요.” 안정식 기자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지속해서 도발한다고 봤다. “미사일을 계속 발사해서 미국의 피곤함을 유도하는 거죠. 북한이 계속해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한국,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피곤하게 하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주더라도 좀 조용히 살자’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어요.” 대북제재는 북한의 핵을 인정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결의에 기초한다. 북한이 NPT 체제 밖의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대북제재를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북한 입장에서 핵을 인정받으면서 유엔 제재가 풀리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에요. 체제 보장에 이어 경제 성장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안정식 기자는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진보와 보수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정식 기자는 실용주의자다. 저서 <빗나간 기대>에서 중도적 실용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적 시각. 보수적 시각이라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는 진보와 보수라는 틀에 매몰되지 않았다. 무엇이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분석하는 방식인지가 중요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갖췄다. 이를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순간 학과 동기들이 모두 저를 쳐다봤어요.” 1989년, 안정식 기자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1991년 초 경제학과 학생회장 선거가 열렸다. 선거관리위원장을 선출해야 했다. 3학년 학생들은 한자리에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학생사회에서 NL 계열과 PD 계열 간의 노선 투쟁이 심했다. 양대 계열에서 학생회장 자리를 노렸다. 선거관리위원장은 중립적이어야 했다. 선거관리위원장을 선출할 차례가 되자 안정식에게 시선이 쏠렸다. NL 계열은 PD 계열이, PD 계열은 NL 계열이 선거관리위원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모두 만족할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제가 확실히 회색지대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안정식은 대학 시절부터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싫어했다.

▲ 2007년 12월 11일, 북한에서 기념 사진 찍는 안정식 기자
▲ 2007년 12월 11일, 북한에서 기념 사진 찍는 안정식 기자

안정식 기자는 본래 진보 성향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진보적 가치를 지니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기자 생활하면서 다양한 취재원을 만났다. 편협하고 자기 생각만 무리하게 주장하는 진보적인 사람을 접했다. 비슷한 보수적인 사람도 만났다. 안정식 기자는 진보와 보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진보나 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합리적 사고를 가졌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대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타인의 의견에 경청하지 않는 이들이 문제였다. 

"언론 보도에 있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쪽을 맹신하고 과격한 주장을 하는 독자들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비난성 댓글뿐 아니라 이메일도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과격한 독자들의 압력이 기사 작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렇기에 언론은 과격한 독자로부터 독립되어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혹은 보수라는 특정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독자로부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안정식 기자는 이상보다 현실을 중시했다. 그가 쓴 책의 제목도 <빗나간 기대>다. 기대 즉 이상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대가 지나쳐 현실을 잘못 읽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1년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북한 혁명을 기대해서는 안 되고,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2021년 기사에서는 햇볕정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솝우화의 나그네는 햇볕의 의도를 모르고 외투를 벗었다. 북한은 이솝우화의 나그네와 달리 햇볕정책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실주의적 성향은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서 형성됐다. 그에게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팩트였다. 그는 28년간 취재하면서 사실에 기반한 분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정식 기자의 사실 중시 성향은 보도에서도 드러난다. 2013년 8월, 리설주가 포르노에 출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몇몇 한국 언론은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받아 썼다. 스포츠 경향은 <김정은 부인 리설주 ‘야동’ 실재 가능성 높아>, 스포츠 조선은 <‘음락추문’ 리설주, 최근 확바꾼 헤어스타일까지 덩달아 화재>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안정식 기자는 적지 않았다. “리설주 포르노가 유출돼서 퍼지는 게 납득 가지 않았어요. 국내 주요 언론사도 다 썼지만 저는 끝까지 믿을 수 없다고 버텼죠.” 결국, 리설주 포르노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안정식 기자의 대북관도 현실에 기초했다. 냉정했다. “요새 제가 바라보는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한반도 냉전 구조보다는 북한 체제의 경직성이에요”. 안정식 기자는 북한 체제의 경직성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왕국이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정보와 차단되어야 합니다." 북한 체제는 고립을 통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 정보에 노출되는 순간 북한 체제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쉽사리 문호를 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점진적 통일을 의미하는 ‘소프트랜딩(연착륙) 통일’보다 급속도로 통일을 이루는 ‘하드랜딩(경착륙) 통일’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소프트랜딩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한의 대북정책이 일관돼야 할 뿐 아니라 북한의 자발적 변화도 필요하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들쑥날쑥하다. 북한은 체제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개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점진적으로 통일할 가능성은 적다. 소프트랜딩 통일이 바람직하지만, 하드랜딩 통일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하드랜딩 통일에 대해 다룬 안정식 기자의 책 '빗나간 기대' (출처=YES24)
▲ 하드랜딩 통일에 대해 다룬 안정식 기자의 책 '빗나간 기대' (출처=YES24)

그는 갑작스럽게 통일이 이루어지면 사회적 혼란이 크리라 전망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드랜딩이 갑자기 벌어지면 당황할 겁니다. 우리 사회가 하드랜딩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거 같아요. 하드랜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하드랜딩을 준비할 목적으로 <빗나간 기대>를 썼다. 

안정식 기자에게 통일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50세가 넘었어요. 길게 잡아도 70세까지 활동할 텐데, 여력이 된다면 통일로 가는 방향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통일의 기회를 담보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통일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통일 찬성 여론을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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