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회의원인 마가레테 바우제는 온라인 거짓 정보에 4년 넘게 시달려왔다. 한 남성이 페이스북에서 이민 문제에 대한 그녀의 발언을 왜곡해 퍼트렸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이 남성의 집에 경찰이 찾아왔다. 이 사람은 독일 사정당국으로부터 벌금형을 통보받았다. 벌금은 1,400유로(한화 약 200만원)였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9월 23일 ‘온라인 혐오 발언으로 경찰이 방문할 수 있는 곳’(Where Online Hate Speech Can Bring the Police to Your Door)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A4 용지 10장에 달하는 이 기사는 아담 사타리아노와 크리스토퍼 슈에체 기자가 독일이 어떻게 온라인 혐오범죄를 처벌하는지를 심층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이들은 베를린과 괴팅겐, 아우크스부르크 등 독일 현지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혐오범죄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을 만났다. 수사를 책임지는 검사들과 경찰들도 취재하고, 각 지역의 수사본부도 방문해 현장의 상황을 확인했다. 

▲ 뉴욕 타임스의 독일 온라인 혐오 처벌 심층 취재기사 (출처=뉴욕타임스)
▲ 뉴욕 타임스의 독일 온라인 혐오 처벌 심층 취재기사 (출처=뉴욕타임스)
▲ 뉴욕 타임스의 독일 온라인 혐오 처벌 심층 취재기사 (출처=뉴욕타임스)
▲ 뉴욕 타임스의 독일 온라인 혐오 처벌 심층 취재기사 (출처=뉴욕타임스)

뉴욕 타임스가 독일 사례에 주목하는 이유는 독일이 다른 서방 선진국들과 달리 지난 몇 년간 온라인 혐오범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형사적 대응을 추구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 법무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https://www.bmj.de/)를 살펴보면, 다양한 종류의 혐오 발언을 처벌하는 독일 형법 규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까지 폭넓게 적용되는 이 규정들은 작년에 처벌 강화를 목적으로 개정돼 올해 2월부터 시행됐다. 강화된 입법안은 위협에 관한 형법 241조, 명예훼손에 관한 형법 188조 등의 처벌 범주를 넓히고 온라인 혐오범죄의 징역형을 최대 2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소셜미디어 기업에 강력한 의무를 지우는 법안의 정보도 사이트에 나와 있다. 뉴욕 타임스는 2017년부터 독일에서 시행된 일명 ‘네트워크 시행법’을 소개했다. 페이스북과 구글 등 독일에서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신고된 위법 콘텐츠를 24시간 내 삭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5000만 유로, 한화 약 711억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원활한 법 집행을 위해 독일 당국은 인터넷 경찰조직의 규모를 확장했다. 이들은 인터넷 공간에서의 혐오나 모욕, 거짓 선동 혹은 위협 등의 사례를 적발해 예고 없이 가해자들의 집을 방문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전자 물품을 압수하거나 관련 인물들을 심문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러한 수색이 지난 3월 하루 동안 독일 전역의 100가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판사는 가해자들에게 수천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2년 전 괴팅엔 시에서 생긴 한 온라인 혐오범죄 수사팀이 뉴욕 타임스 취재에 응했다. 6명의 변호사와 수사관들로 구성된 이 팀은 공격적인 수사를 펼치기로 유명했다. 팀은 작년에 566개의 온라인 범죄를 조사했다. 이 중 28%가 벌금 등의 처벌로 이어졌다. 

20년 범죄 수사 경력의 프랭크-미카엘 라우에 검사가 팀을 이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의 스마트폰 암호를 우회해 접속하는 독일 연방정부 연구소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팀의 올해 범죄 조사 건수는 작년의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뉴욕 타임스는 독일 괴팅겐 주 정부의 문서들을 확인하면서 8,500건이 넘는 온라인 혐오 발언 조사 또는 수사 사례를 발견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소 혹은 처벌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실제로는 훨씬 더 높을 거라 예상한다. 

이러한 독일의 선구적 행보는 나치즘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히틀러의 추억이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수정헌법 제 1조 표현의 자유를 생명처럼 여기는 미국은 법으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데 소극적이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달린 151개의 댓글에서 몇몇 미국 독자들은 표현권 침해다, 무섭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 독일의 법이 무섭다는 아이다호 출신 독자의 댓글 (출처=뉴욕타임스)
▲ 독일의 법이 무섭다는 아이다호 출신 독자의 댓글 (출처=뉴욕타임스)
▲ 표현의 자유를 막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뉴저지 출신 독자의 댓글 (출처=뉴욕타임스)
▲ 표현의 자유를 막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뉴저지 출신 독자의 댓글 (출처=뉴욕타임스)

물론, 독일 내부에서도 단속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특정 발언을 불법이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실제로 이 기준을 의심하고 있는 아우크스부르크의 기후 운동가 알렉산더 마이를 취재했다. 

▲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기후운동가 알렉산더 마이 (출처=뉴욕타임스)
▲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기후운동가 알렉산더 마이 (출처=뉴욕타임스)

그가 페이스북에서 극우 정치인과 논쟁하던 중이었다. 정치인이 이슬람교도를 비판하자 답장으로 ‘핌멜’(성기를 지칭하는 욕설)벽화 사진을 보냈는데, 이로 인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경찰 수사에 기후 행동주의를 반대하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믿었다. 이 외에도 독일 지방 검사와 경찰이 법 집행에 너무 많은 재량권을 가졌다는 우려나 네트워크 시행법의 확대에 대한 기업들의 저항 등 장애 요소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독일은 온라인 혐오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대응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방식이라 여겼다. 규제가 오히려 시민들이 공격당할 두려움 없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는 관점이다. 

주변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독일의 의도에 공감한다. 2019년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마르쉐 정당이 독일 네트워크 시행법과 거의 유사한 법안을 고안했다. 그러나 곧 표현의 자유 문제로 헌법위원회에서 기각당했다. 영국도 독일과 비슷한 온라인 안전법을 발의한 상태다. 영국 정부 법률 홈페이지(https://www.gov.uk/)에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혐오를 고민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한국에서도 논의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여전히 별도의 혐오범죄 처벌법은 없다. 법률신문 오피니언은 온라인 모욕 행위를 한국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으나 실제 처벌은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고 전했다. 

설리와 구하라 등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과거 악플방지법이 발의되었으나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독일 정치인 발터 뤼브케가 인터넷에서 학대를 당하다 네오나치에 의해 암살된 사건이 국가 내 본격 규제의 촉매제가 된 경우와 대조적이다. 

▲ 네오나치에 의해 살해된 독일 정치인 발터 뤼브케 (출처=뉴욕타임스)
▲ 네오나치에 의해 살해된 독일 정치인 발터 뤼브케 (출처=뉴욕타임스)

나라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독일이 선도하는 혐오 표현 단속 기조는 세계적인 추세로 거듭나고 있다. 여러 장애물에도 과감한 시도에 나선 독일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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