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야나 파샤예바 로이터 통신 피디를 화상 중계를 통해 만났다. 윤세영 저널리즘 스쿨 특강에서였다. 그는 모스크바 국립 대학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러시아 경제지 코메르산트 라디오국과 슬레이트 매거진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로이터 통신 모스크바 지부에서 비디오 프로듀서로 일한다. 정치, 사회,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속보와 기획 기사를 주로 다룬다. 유튜브 구독자 233만 명을 보유한 러시아의 언론인 이리나 시호만의 비디오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유튜브 저널리즘은 언론 규제가 강한 러시아에서 대안 언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약 1시간 동안 영어로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진 후 러시아 언론이 마주한 현실과 언론인으로서의 고민 등을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강연이 끝난 후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 화상 프로그램으로 강연 중인 야나 파샤예바 로이터 통신 피디
▲ 화상 프로그램으로 강연 중인 야나 파샤예바 로이터 통신 피디

우크라 사태 후 러시아 언론 지형 변화

텔레비전은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매체다. 러시아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텔레비전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러시아 국민이 올해 5월 기준 전체의 63%다. 소셜 미디어(39%), 인터넷 출간물(32%)이 뒤를 잇는다. 파샤예바 피디는 “TV를 켜면 항상 같은 얼굴의 전문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에 충성스러운 인물들이다. “프로그램은 그들이 무엇을 말할지 알기 때문에 그들을 믿고, 그들을 출연시키기를 원한다. 그들은 특별 군사 작전에 대한 최신 뉴스를 전하고, 호스트 또한 친정부적 관점을 공유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칭하는 표현은 ‘특별 군사 작전’으로 통일됐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측 입장이나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언은 전달할 수 없고, 러시아 정부에 호의적인 보도만 가능하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 언론은 군사 활동에 대해 다루는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측면만을 다루고 있다. 지난 5월 3일 월스트리트저널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러시아 독립 매체, 크렘린 탄압에 저항하다> 기사에 따르면 정부 비판 성향의 신문사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수백 명의 언론인이 러시아를 떠났다. 파샤예바 피디는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 “언론인에 대한 어떤 법안이 이미 있는데 내가 그걸 몰랐거나 실수로 어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독립 언론에 접근할 방법이 차단돼 가상사설망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일부 소셜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가상사설망을 이용하면 신분이나 온라인상의 위치를 숨길 수 있어 접속 차단과 규제 회피가 가능하다. 걸러지지 않은 정보를 찾는 사람들은 텔레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등으로 이동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월 10일 <푸틴의 인터넷 봉쇄를 피할 방법을 찾고 있는 러시아인들>이란 기사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정부가 인터넷 사용에 제한을 가하자 가상사설망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 사태에서 더욱 커진 사실 확인의 중요성

문제는 텔레그램이나 유튜브 등에 게재되는 정보에는 가짜뉴스가 흔히 섞여 있다는 점이다. 파샤예바 피디는 텔레그램에 올라오는 수많은 콘텐츠에 대해 “사람들을 오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수많은 거짓 정보들이 있다”면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내전이나 크림반도 합병 당시에 찍은 비디오 등이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이라고 올라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것은 공식 발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서로 다른 피해 규모 공표를 예로 들었다. 지난 3월 2일, 러시아 국방부는 약 500명의 러시아 군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반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같은 날 러시아의 피해가 7,000명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우리 군대가 강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사망자 수를) 축소해서 발표하는 경향이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러시아 군인들이 겁을 먹고 (우크라이나로) 가지 않도록 (사망자 수를) 과장하는 게 효과적이다.” 하루 전날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군 사망이 푸틴의 전략의 잠재적 약점을 드러내다>라는 기사에서 미 국방부 고위 관리가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사태 발생 초기 5일간의 러시아군 피해 규모를 1,500명으로 추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인공위성 사진 분석과 통신감청, SNS 사진과 보도 등을 토대로 추정한 수치다. 

파샤예바 피디는 세부 사항에 유의하며 모든 것을 더블체크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한 번은 러시아 국방부에서 대치 현장을 담은 영상을 게시했다. 국방부는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이라고 했지만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장소가 어디인지 등에 의문이 생기고 분명히 답할 수 없어서 우리는 그냥 영상을 게시하지 않았다.” 국방부가 위치나 날짜를 밝힐 때는 발언의 주체가 국방부라는 것을 명확히 기재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관리의 발언 등을 담을 때는 우크라이나 측 공식 입장으로 혼동하지 않게끔 그들이 러시아 정부의 편이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서방 제재와 언론보도에 등 돌린 러시아인

그는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인들이 제대로된 정보를 얻지 못하도록 하는 내부 감시망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유튜브가 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인의 유튜브 채널 수익화를 막았기 때문이다. “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처럼 유튜브에 게시된 모든 다큐멘터리는 유튜브 수익에 의존한다.” 파샤예바 피디가 제작자로 참여한 이리나 시호만의 유튜브 계정은 지난 7월 17일 <관과 묘비를 위한 돈만 주어졌다. 러시아인 가족들은 군인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라는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이 영상은 러시아 외곽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러시아 군인의 가족이다. 러시아 정부는 아들이 입양되어 친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영상은 8월 4일 기준 조회수 289만을 넘겼다.

▲ 야나 파샤예바 피디가 비디오 프로듀서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사망한 러시아 군인의 어머니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 야나 파샤예바 피디가 비디오 프로듀서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사망한 러시아 군인의 어머니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그는 인스타그램의 혐오 표현 허용이 러시아인들의 백래시(반발)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0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기업 메타는 푸틴과 러시아군에 대한 혐오 표현을 허용하기 위해 폭력적 콘텐츠 관련 규정을 완화했다. 러시아가 지난 3월 4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접속을 차단하고 러시아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를 처벌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것이었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인스타그램 접속마저 차단했다. 파샤예바 피디는 “러시아에 대한 혐오 표현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정부의 ‘특별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도 반발심을 느끼고 이 조치를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은 러시아인들에게도 독립적인 뉴스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이제 가상사설망으로만 접속할 수 있고 이용자 상당수를 잃었다.”

파샤예바 피디는 서방 언론이 러시아 제재로 인한 러시아인들의 피해나 문화계 러시아 보이콧 등을 더 다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사람들은 (러시아) 민간인에 대해 더 많은 제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이 입는 피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러시아 예술가나 문화를 모두 퇴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서방 언론이 이런 뉴스는 제대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그들이 러시아 차별에 일조한다고 주장하기 좋다고 지적했다.

▲ 이화여대 대학원 별관 2층 강의실에서 특강을 듣는 윤세영 저널리즘 스쿨 학생들
▲ 이화여대 대학원 별관 2층 강의실에서 특강을 듣는 윤세영 저널리즘 스쿨 학생들

“이 일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달라.” 한 학생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높이기 위해 한국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하자 파샤예바 피디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등을 한국과 주변국 관계 속에서 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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