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일과가 끝난 오후 5시 30분. 병사들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휴대폰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받은 병사는 재빨리 생활관으로 돌아가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다. 일부 병사는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들으며 카카오톡을 한다.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병사는 수익률을 확인하며 탄식한다. 생활관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TV조차 켜져 있지 않다.

강원 화천군 최전방에서 포병으로 복무한 김건 씨(28)가 묘사한 병영 풍경이다. 김 씨는 “5시 반만 되면 마치 각자의 자리로 퇴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과 후 병사의 휴대폰 사용은 2년 전에 공식화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8년 4월부터 일부 부대에서 시범 운용했고 2020년 7월 전 군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성기호 씨(31)는 공군에서 복무했다. 중위 시절이던 2019년 2월, 그의 부대가 시범대상이 됐다. 휴대폰으로 군 시설을 촬영하거나 훈련 계획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지 모른다고 일부에서 우려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병사들 불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부 사고는 있었다. 2019년 8월, 해군 초병들이 휴대폰으로 치맥을 주문하고 술파티를 벌엿다. 2020년 2월에는 육군 병사들이 카카오톡으로 암구호를 주고받아 징계를 받았다. 같은 해 4월에는 현역 육군 병사인 이원호 씨가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는 분위기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2019년 4월과 2020년 2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휴대폰 사용 이후 병사의 군생활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군 복지정책 만족도 조사에서 ‘병영문화 개혁 중 잘 계획됐다고 생각하는 항목’에서도 ‘휴대폰 사용(58%)’이 1위에 올랐다. 다음은 ‘봉급 인상/목돈마련(48%)’과 ‘군 복무기간 단축(46%)’이었다.

휴대폰은 병영문화를 바꿨다. 일과 이후엔 주로 운동을 했지만 휴대폰을 활용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게 됐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전자책을 읽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부대 생활이 너무 개인적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육군사관학교장과 31보병사단장을 지낸 고성균 예비역 육군 소장은 “MZ세대 자체가 개인주의에 익숙해져 있는데, 군대에서 휴대폰까지 쥐어주니 병사들이 더욱 개인주의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군에서 복무했던 이우평 씨(24)는 긍정적이다. 그는 엄격한 군기를 요구하는 군대에서도 생활과 관련된 부분은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병사들이 자기가 쉬는 곳에 돌아와서까지 통제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 장병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출처=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 장병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주한미군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했을 때, 논란이 있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육대전)’ 페이스북에 카투사 병사들이 휴대폰으로 윤 당선인과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올라오면서다.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 씨(28)는 카투사 병사들이 일과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면, 당장 국군 병사에게 같은 지침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병사 휴대폰 사용시간 확대를 건의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작년 11월 초부터 올해 2월까지 병사의 휴대폰 사용시간을 시범적으로 늘렸다. 대상은 육군 모 사단이었다.

병사들은 △ 최소형(아침 점호~일과 시작 전/일과 이후~9시) △ 확장형(아침 점호~오후 9시) △ 자율형(24시간)을 나눠 휴대폰을 사용했다. 훈련병은 입소 첫 주에만 사용하는 그룹과 5주 내내 사용하는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수정 씨(20)는 작년 11월 이 부대에 입대한 남자친구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받고 펑펑 울었다. “신병교육대가 휴대폰 사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입대 당일에 연락이 왔어요. 행복하고 기쁜 마음에 많이 울었죠.”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현역 육군 하사를 만났다. 시범 기간에는 병사 신분이었다고 말했다. 50분 일하면 10분 쉬는 방식이어서 틈틈이 휴대폰을 사용했다. “할 땐 하고 쉴 땐 쉬자는 마음으로 군 생활에 임하니 사기가 올라갔어요.”

다른 중사는 병사를 찾거나 전파사항을 전할 때 편했다고 말했다. 다만 24시간 사용은 반대했다. “당직사관으로 근무하며 보니 늦게까지 안 자고 휴대폰을 하는 병사가 있었어요. 이를 막기 위해 자주 순찰을 도니 잠을 자는 병사까지 불편을 겪었죠.”

휴대폰 사용 확대에 부정적인 여론이 만만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군대 내 휴대폰 사용을 막아달라는 게시글이 3월에 올라왔다.

글쓴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에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며 군대 내 휴대폰 사용은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4월 10일에 종료된 이번 청원에는 1만 8337명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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