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예은 씨(22)는 시험 기간 내내 노트북 앞에서 과제를 했다. 여느 대학생과 비슷했다. 무릎에 앉은 아들 박주안 군(1)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눕혀놓으면 깨니까 온종일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아들을 돌보며 과제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대학생이자 엄마. 김 씨처럼 아이를 키우며 학업을 계속하는 부모를 해외에서는 ‘스튜던트 맘’(Student-Mom)이라 부른다. 국내에서 이런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유추할 수는 있다.

고등교육법에는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필요하거나 여학생이 임신 또는 출산하게 된 때” 학칙으로 정한 바에 따라 휴학할 수 있다는 조항이 2016년 신설됐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이 조항으로 육아휴학 중인 여성 대학생은 지난해 2174명.

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교회에서 남편을 만났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이 찾아왔다. 임신 9주 차에 유산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자 퇴사했다. 대학을 졸업해야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 임신 중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21살에 아들을 낳고 축하보다는 불편한 눈초리를 먼저 받았다.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으니까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쳐다봐요. 위아래로 뚫어보고, 배 한 번 봤다가, 남편 얼굴 한 번 봤다가, 제 얼굴 봤다가. 어른들한테 ‘애가 애를 낳았네’ 이런 얘기는 기본으로 듣고.”

▲ 김예은 씨 가족(김예은 씨 제공)
▲ 김예은 씨 가족(김예은 씨 제공)

고등학생 때 엄마가 된 김하린 씨(27) 역시 주변의 지나친 관심으로 힘들었다. “버스에 타도 지하철에 타도 아기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지, 아기는 누가 키워주는지 시시콜콜 물어보더라고요.” 나이가 더 많았다면 받지 않았을 질문 같았다.

가끔 어린 딸에게 김 씨가 진짜 엄마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김 씨는 미디어가 10~20대 엄마의 모습에 편견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른 나이에 출산해 아이를 방임하거나 학대한 이들의 내용을 부각한다고 느꼈다.

올해 2월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한 이서영 씨(23)는 재학 시절 ‘독한 엄마’를 자처했다. 조별 과제를 할 때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학우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더 애썼다.

어린이집 학부모 사이에서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학부모는 대부분 30대였다. 주변에서 또래 엄마를 본 적은 없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선 학부모 대표를 뽑을 때 공지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이 씨는 김소윤 양(2)을 낳고 유튜브 채널 ‘엄마는 대학생’을 개설했다. 대표 키워드는 ‘20대 엄마’, ‘엄마 대학생’이다. 육아뿐만 아니라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시험공부를 하거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등 대학생으로서의 이 씨 삶을 담았다.

아이를 옆에 눕히고 과제를 하는 모습에 시청자는 ‘대단하다’, ‘멋지다’는 댓글을 남겼다. 이 씨는 “20대 엄마를 검색해보니 너무 찌든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많았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서영 씨가 딸을 돌보며 대학 과제를 하는 모습(출처=유튜브)
▲ 이서영 씨가 딸을 돌보며 대학 과제를 하는 모습(출처=유튜브)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2019년 1월, 이서영 씨는 딸 소윤이를 가졌다. 그해 1학기,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다 입덧 탓에 수업에 늦는 일도 있었다. 배 속 아이가 자랄수록 몸은 나날이 무거웠지만 휴학은 하지 않았다.

1학기에 이어 여름 계절학기까지 다녔다. 얼른 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한 살 위인 남편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씨 역시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생계를 위해 과외를 이어 나갔다.

김하린 씨는 2018년에 대학에 입학해 간호학을 전공했다. 홀로 아이를 키운다. 가족이 경제적 지원을 해줄 상황이 아니다. 국가장학금 제도로 학교에 다녔지만, 문제는 생활비였다. 다른 대학생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김 씨는 종종 물류센터 일용직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런데도 턱없이 부족해요.”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했지만,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생활비 대출로 많은 빚이 남았다. 경제적 어려움 앞에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나라에서 지원도 받고, 알바랑 근로장학생도 했는데 돈이 없으니까요. 물론 제 책임이 더 크겠지만….”

미국 프린스턴대는 자녀가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에게 자녀 1인당 최대 5000달러(한화 약 628만 원)까지 양육비를 지원한다. 만 4세 자녀를 두 명 이상 두었다면 최대 1만 달러(한화 약 1269만 원)까지다.

한국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1월, 만 24세 이하인 부모가 학업을 계속하도록 장학금 지급, 취업 지원, 아동양육비 지원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청소년부모·한부모 양육 및 자립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서영 씨는 올해 3월부터 강원 정선군의 고등학교에서 윤리 과목을 가르친다. 대학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했지만 처음부터 교사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멀티미디어학을 복수전공하고 책 출판 프로젝트를 하는 등 민간 기업에 취업하려 관련 경험을 쌓았다.

2년 전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고 다른 진로를 찾았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적어서였다. 정신없이 출퇴근하는 날이 이어지자 주객이 전도됐다고 느꼈다. “가정을 유지하려 돈을 버는 건데 애를 못 보니까요.” 공무원이 낫겠다 싶어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김예은 씨 역시 공공기관 취업을 희망한다. “공기업 아니면 안 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며 만족했다. 출퇴근 시간이 명확했고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남편도 공공기관에서 일한다. “아기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인 거예요.”

이화여대 정익중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여성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지 생각할 필요 없이 모든 직장이 육아에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에게만 출산의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니라 사회와 가정에서 평등한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서영 씨는 출산이 임박했던 2019학년도 2학기에 휴학했다. 출산 후 짧게는 1주, 길게는 3~4주 정도 쉬어야 하는데 결석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를 낳느라 결석한 시수만큼 대체 과제를 내주거나, 온라인 강좌를 듣는 방식으로 출석을 인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하린 씨는 시험 기간에 2~3일씩 밤을 새울 때가 있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아이를 씻기거나 준비물을 챙기고 공부를 봐줘야 했다. 공부만 해도 되는 친구를 보면 부러운 마음에 속상해졌다. 김 씨는 잠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한 번은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임신하거나 출산한 학생을 위한 학사조정 제도(Childbirth Accommodation Policy)를 운영한다. 과제, 보고서, 시험 등 과목 이수 조건을 담당 교수 및 학과장과 협의해 조정할 수 있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다.

2019년까지만 해도 대학원생 부모는 어린이집 입소 1순위에 해당됐지만 대학생은 아니었다. 대학생 부모 김 모 씨는 이 규정이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며 2019년 10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청구 기간을 이유로 들어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다음 해 보건복지부는 휴학생이나 출석 수업이 없는 원격대학 학생을 제외하고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에 부모가 대학생인 경우를 추가했다.

정익중 교수는 지원이나 정책 대상이 범주화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카테고리를 만드는 한 놓쳐버리는 사람이 많이 생길 거예요. 대학생 부모도 카테고리 때문에 놓친 부분일 것 같고요. (같은 어려움이 있다면 누구나) 위기가 생기면 쉽게 도움을 요청해 지원받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죠.”

김예은 씨는 올해 1학기 중간고사가 한창이던 4월 27일 둘째를 낳았다. 출산 전날, 그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환자복 차림의 김 씨는 출산을 코앞에 두고도 학교생활을 걱정하지 않았다. 한국방송통신대는 온라인으로 강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아와 학업을 혼자 감당하기엔 여전히 어렵다. “(첫째) 아기 신생아 때 휴학을 안 해서 온종일 안고 과제를 했어요. 둘째 낳을 때는 절대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2학기는 휴학 신청을 하려 해요.”

김하린 씨도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에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도가 있었으면 사회에 나갔을 때 훨씬 도움이 되고 이렇게 허덕이지는 않지 않았을까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현실화되기까지는 오래 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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