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옥 씨(69)에게는 집이 없다. 그는 컨테이너와 친구 집, 장례식장을 떠돌며 지낸다. 3월 5일 한밤중에 불이 산을 타고 내려왔다. 이 씨가 운영하던 펜션 일부가 불에 탔다. 펜션 앞에 지은 3채의 조립식 건축물은 전소됐다. 그중 하나는 이 씨의 집이었다.

그는 악몽같은 그날 새벽을 기억한다. 코로나 19 백신을 접종하고 몸이 좋지 않아 서울 며느리 집에 머물렀다. 화재 뉴스를 보고 휴대전화 폐쇄회로(CC)TV 앱으로 강릉 집을 확인했다.

산꼭대기 불이 바닥 솔잎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불티가 날려 언덕 아래쪽 대문으로 옮겼다. 불길은 바닥에서 벽으로 올라갔다. 건물뿐 아니라 그가 애지중지하는 반려견까지 삼켰다. “그 노린내. 불구덩이에서 막 나온 공기. 그거는 말로 못해요.”

산불은 3월 5일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시작해 동해시까지 옮겨붙었다. 산림 약 4200㏊가 불에 탔다. 여의도 면적(290㏊·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의 14.4배다.

강릉에서 주택 15채, 동해에서 주택 등 건물 181채가 전소됐다. 일부 불에 탄 건물은 강릉 6채, 동해 113채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4월 6일 발표한 복구계획에 의하면 최종 피해액은 강릉 113억 원, 동해 약 284억 원이다.

취재팀은 4월 17일과 18일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와 동해시 묵호동 논골담길의 화재 피해자를 만났다. 강릉과 동해는 2019년 4월 4일에도 1260㏊ 이상의 산불을 겪었던 지역이다.

옥계면은 3년 전에도 대형 화재의 시발점이었다. 신당에서 전기 초가 합선돼 불이 났다. 지난 화재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다시 화마에 상처를 입은 셈이다.

▲ 이금옥 씨의 집터
▲ 이금옥 씨의 집터

이 씨의 집이 있던 자리엔 휘어진 철골만 남았다. 가재도구가 전부 불에 탔다. TV와 에어컨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추억을 담은 앨범도 불 속에서 사라졌다. 이 씨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나무를 제일 아꼈는데 다 죽어있다.”

그는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집 아래로 계곡을 끼고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다. 보험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보험금 부담으로 가입할 마음을 먹지 못한다.

이 씨는 주택 전소로 인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에 탄 조립식 주택이 실거주지임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 이의신청을 했다. 25년간 살아온 증거물인 사진을 준비했지만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강릉시청 건축과의 김기녀 씨는 “애초에 전소된 곳이 주택이 아닌 버섯재배사로 등록되어 있다”며 실거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통화에서 김 씨는 피해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김옥자 씨의 조립주택
▲ 김옥자 씨의 조립주택

옥계면 남양2리 범우리마을의 김옥자 씨(92)는 강릉시에서 제공한 임시 조립주택에 산다. 취재팀을 만났을 때, 그는 화재 당일 신었던 고무장화 차림이었다. 20도를 넘어선 날씨에 맞지 않게 두꺼운 옷과 조끼를 입었다.

불이 났던 3월 5일 새벽, 김 씨는 이웃의 외침에 눈을 떴다. 빠르게 번지는 불길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 급히 고무장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모두 마을 개천으로 대피했다.

불길이 잦아들자 이웃과 함께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날이 밝고 김 씨는 삼척의 둘째 아들 집으로 갔다. 범우리마을에서는 주택 4채가 전소됐다. 3채는 주인 없는 빈집 혹은 제실이었고 한 채는 김 씨가 살던 집이다.

강릉시는 집이 전소된 3세대 3명에게 임시 조립주택을 제공하고 1명에게는 원룸을 빌려줬다. 조립주택 입주는 3월 26일 시작했다. 화재 21일 만이다.

김 씨는 얼마 후 마을회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안오려 했는데 회관에 가서 있어야만 일이(지원이) 빨리 온대요.” 마을회관에 20일 가까이 홀로 머물렀다.

그 역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노인이 대부분인 범우리 마을에서 보험에 대한 정보를 얻을 마땅한 경로가 없다.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수시로 찾아와 안부를 묻고 살림을 챙긴다. 취재팀과 만난 날에는 손자와 이웃이 찾아왔다.

김 씨의 집에 들른 이웃 김연복 씨(53)는 화재 이후 마을에 적절한 손해 보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보험 가입을 안했으니까요. 불이 날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요.”

화재 당일의 오전 1시 30분. “산불이 났다”고 알리는 남양1리 이장 김윤종 씨(67)의 목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남양1리에는 약 120가구가 산다. 대부분 혼자 사는 할머니. 반장들이 집집마다 연락해서 주민 모두가 대기했다가 마을회관으로 대피하도록 했다.

김 씨의 집은 무사했지만 생업에 지장이 생겼다. 며칠 간은 연기가 자욱했다. 그는 양봉을 한다. 꿀벌의 활동성이 크게 떨어졌다. 시름시름 앓던 꿀벌은 폐사했다.

양봉 관련 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받기가 까다롭다고 밝혔다. “산불 연기 피해 이런 걸로 (벌이 죽은 경우에는) 주는데 벌이 죽은 게 안에 있어야 돼. 사체가 없으면 잘 안 주려고 하지. 또 벌들은 안에 죽은 게 있으면 물어서 멀리 갖다 내버리는 습성이 있어요.” 강릉시와 동해시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김 씨는 폐사한 꿀벌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 묵호항활어판매센터
▲ 묵호항활어판매센터

산불은 동네 상인에게도 치명상을 입혔다. 점심시간, 묵호항활어판매센터 인근은 한산했다. 맞은편 카페는 테이블 하나에만 손님이 있었다. 그나마 카페를 운영하는 최미숙 씨(57)의 지인. “손님은 여기 바로 옆에서 식당하는 분이에요. 근데 지금 점심시간이잖아요. 근데 비워 놓고 그냥 왔어. 사람이 없으니까….”

코로나 19가 한참 심각할 때도 손님이 이렇게까지 없진 없었다. 최 씨는 코로나에 화재까지 겹쳐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대료와 재료비를 포함해 고정비 지출만 매달 200만 원이다. 평일에 40만~50만 원을 팔아야 하지만 하루 매출이 2만~3만 원일 때도 있다고 했다.

옆 가게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늘은 개시도 못하고 있어. 무조건 하루에 10만 원은 벌어야 하는데….” 염명수 씨(72)의 말에 허탈감이 묻어 있었다. 강원도 수산시장에서 호남건어물을 운영하는 염 씨는 65년 전, 전라도에서 왔다. 장사를 한 지는 18년 정도 됐다.

코로나 19에 산불까지 겹쳐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다. 체감상 손님의 5분의 1이 준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강원도 특산물인 오징어의 개체 수가 4~5년 전부터 크게 줄었다.

강릉시와 동해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1조와 제66조에 따르면, 정부는 이재민만 국고보조로 지원한다. 최 씨와 염 씨 같은 소상공인은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3조에 따라 자금융자 혜택 정도만 볼 수 있다.

▲ 불에 탄 산봉우리
▲ 불에 탄 산봉우리

옥계면 산은 온통 검거나 갈색이었다. 멀리서 보면 갈색 도화지 위로 검은 크레파스를 죽죽 그어놓은 것 같았다. 불에 탄 나무를 간벌하고 새로 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2019년 화재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언덕 아래 김진학(78) 배남주(71) 씨 부부의 집이 있다. 바로 뒤로 죽은 나무 1그루가 기울어진 채 서 있다. 부부는 여전히 불안 속에 산다. 나무가 집을 덮칠까 걱정한다. 배 씨는 “나무 좀 뽑아가라고 써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3년 전 산불을 지금도 기억한다. 불길이 산을 타고 집을 덮쳤다. 뒤뜰 나무와 지붕에 불이 붙었다. 창문이 깨지고 지붕의 플라스틱 빗물받이가 녹았다. 나무가 사라진 산 위로 비가 많이 오면 흙이 흘러 산사태가 날까 걱정한다.

김진학 씨 부부는 피해를 갈무리하자마자 농사에 매진했다. 심리상담사가 마을을 돌았지만 알 틈도 없었다. 두 사람은 주택화재보험에도 가입했다. 태풍과 산사태까지 보장하는 보험이라고 했다. 이장 김윤종 씨는 남양1리 주민들이 “화재 이후 보험에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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