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식 씨(26)는 올해 설날, 가족과 만나 퇴사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그는 한국전력공사 계열사인 한전 KPS에서 3월 16일 퇴사했다. 입사 1년 3개월 만이었다. “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 씨의 말이다.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근속이 가능해 공기업과 대기업은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근무 환경이나 대우가 좋아 ‘신도 못 들어가는 직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취업준비생이 공기업과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다. 그런 직장에서 젊은 직원의 퇴사가 잇따르고 있다.

유튜브에서 ‘대기업, 공기업 퇴사’를 검색하면 브이로그와 후기가 많이 나온다. 상당수가 2030 세대. 한국은행도 마찬가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4월 18일 국회 서면 답변에서 최근 젊은 직원의 퇴직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유는 무엇일까.

주대성 씨(36)는 전력그룹사 공기업에서 4급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퇴사했다. 지금은 유튜버, 대리운전 기사, 배달 기사로 일한다. “퇴사 후 이런 일을 한다고 하면 인생 막산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버는 돈이 좀 적더라도 요즘이 만족스럽다. 운전과 주차를 즐기고 정비에 관심이 많아 사무실에는 자전거, 전동휠, 전동킥보드 등 전동제품 5대가 있다. 매일 취미 활동을 하는 덕분에 지금 일을 잘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주대성 씨 유튜브 화면
▲ 주대성 씨 유튜브 화면

이범식 씨도 꿈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급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하고 싶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취업준비생을 위한 책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종종 현직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그는 회사 밖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보람을 느꼈다. 직장인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 씨는 취업준비생에게 도움이 될 콘텐츠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직장은 마음에 들지만 자기 꿈과 병행할 수 없어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 유튜버 ‘절약왕’ 씨(33)는 2015년 여름 채용전환형 인턴으로 공기업에 취직했다. 그리고 2021년 11월, 6년 차 대리 직급에 사표를 냈다.

업무나 일의 강도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못 하니 가면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겸직이 자유로웠다면 회사를 계속 다녔을 것”이라며 “지금은 더 치열하고 바쁘게 살고 있지만 도전하고 싶었던 출판, 강의 등 다양한 일을 시도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버 ‘릴리프수잔’ 씨(28)는 퇴사를 준비하는 퇴준생이다. 금융계 대기업에 다닌다. 2017년 1월에 입사해 2021년 3월 퇴사를 결심했다. 부품처럼 일하는 모습에 살길을 찾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한지 공예를 하며 삶을 말하는 크리에이터를 꿈꾼다.

기업은 젊은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연봉 인상에 힘쓴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이 2022년 1월 기업 571개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연봉, 성과금 인상’(44.3%·복수 응답), ‘성과 보상 체계 개편’(32.7%)을 통해 이탈을 막고자 노력 중이었다.

이런 퇴사 현상이 탈노동 흐름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있다. 민가영 서울여대 교수는 “전에는 보다 나은 근무 환경과 높은 임금을 중시했다면, 탈노동 이론에서는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인력의 이탈은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 건설사의 송근주 부장은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적 구성이 피라미드 형태가 돼야 하는데 항아리 구조, 역피라미드 형태”라며 “조직이 늙어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범식 씨는 회사를 주사위 게임에 비유했다. 주사위 위쪽에 보이는 숫자만 다를 뿐 장단점을 합산하면 신의 직장이든 아니든 모든 회사가 비슷하다는 얘기.

“직장을 다닌다는 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와 같아요. 입사하면 주변인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퇴사가 쉽지 않아서 회사를 다니게 돼죠. 제가 퇴사한다고 하니 회사를 나가면 큰일 날 것처럼 설득하던 분도 있었어요. 사실 저한테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이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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