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첫날인 5월 28일, 취재팀은 목포를 출발해 오전 9시 전남 함평에 도착했다. 읍내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정광섭 씨(71)는 평생을 함평에서 살았다. 택시에 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귀가 따갑도록 “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찍으라”고 이야기한다. 대통령이 아니고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당만 보고 찍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바뀌긴 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전투표 갔다 오는 노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민주당의 오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후보 표정만 봐도 알아요. 이미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한다는 걸. 언젠가 그 콧대를 한 번 꺾어줘야 하는데….” 

그는 함평의 열악한 사정이 걱정이다. 딱히 내세울 만한 농산물이 없고 수산업도 빈약하다며 예산을 짜임새 있게 집행해서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후보를 원한다. 

▲ 김유성 국민의힘 함평군수 후보 
▲ 김유성 국민의힘 함평군수 후보 

김유성 국민의힘 함평군수 후보의 선거사무실은 읍내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다. 33년 동안 경찰로 일했다며 자신을 ‘일 중독자’로 소개했다. “명절 때는 흉악범도 집으로 돌아오는 법이죠. 범인 검거를 위해 처마 밑에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지요.” 

정년퇴직하고 내려온 고향은 30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함평을 천지개벽하겠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했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니 다들 머리에 총 맞았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아내와 자녀도 가족 다 죽이려고 작정했냐고 물었다고. 

캠프를 꾸리는데 들어온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선거운동원을 구했다. 이들은 후보 못지않게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후보님이 당선 안 되면 저희 다 죽습니다.” 

그는 선거 운동 첫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욕을 수없이 들었다. 명함을 건네면 어느 주민들은 눈앞에서 찢었다. “어느 날 선거사무실에 출근하는데 딱따구리가 전봇대를 쪼는 거예요. 맨땅에 헤딩하는 제 모습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들었어요.” 

한 달 정도 지나니 반응이 달라졌다. 새벽부터 발에 못이 박힐 정도로 뛰고 시장을 수십 바퀴를 돌았더니 진정성을 알아주는 주민이 하나둘 생겨났다고. 김 후보는 동학농민운동과 고구마 투쟁으로 대표되는 함평의 저력을 믿는다고 했다. 

▲ 최남선 씨가 택시기사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 
▲ 최남선 씨가 택시기사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 

터미널 앞 휴게실에서 택시기사들이 잡담을 나눴다. 선거에서 변화를 기대하냐고 물으니 누군가 갈라진 도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몇 년째 길도 저 모양인데 변화는 무슨 변화.” 

최남선 씨(82)가 그를 달래며 그래도 민주당을 뽑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윤석열 정부에 불만이 많다. “심지어 전두환이나 노태우 때도 호남을 챙겼는데 이번 정부는 호남 사람한테 장관 자리를 하나도 안 줬어. 이건 너무하잖아.” 

함평읍에 사는 박복자 씨(67)는 터미널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누구를 뽑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함평에 나비축제를 처음 만든 이석형 전 함평군수가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공천이 안 되어 안타깝다고 했다. 

터미널 근처에서 아들의 카페 일을 돕던 김인숙 씨(60)를 만났다. 인구 감소로 매출이 계속 줄어드니 아들도 함평을 떠야 하나 걱정한다고 했다. 사람과 공약을 보고 투표할 예정이다. 전라도에선 당만 보고 뽑으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카페 사장(33)은 선거 기간이 피곤하다고 했다. 누가 군수가 되든 바뀌는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소속이나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돼도 민주당이 꽉 잡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본다. 

▲ 국민의힘 신용운 여수시장 후보가 유세 중에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 
▲ 국민의힘 신용운 여수시장 후보가 유세 중에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 

같은 날 오후, 취재팀은 광주를 거쳐 전남 여수에 도착했다. 여서동 회전교차로에서 선거유세 중인 국민의힘 신용운 여수시장 후보를 만났다. 

신 후보, 후배인 본부장과 버스 운전기사, 이렇게 3명이 선거 운동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유세를 직접 기획했다. 시민 정서에 어필하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개사해서 로고송을 만들었다.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호남 대선캠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호남에서의 변화를 실감하고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여수는 2012년 엑스포 이후로 하나도 바뀐 게 없다고 생각한다. 엑스포 인프라를 관광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데도 민주당은 10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변변한 종합쇼핑몰이나 백화점, 영화관이 없는 여수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여수는 한자로 고울 여(麗)에 물 수(水) 자를 씁니다. 그러나 물이 한 곳에 갇히면 썩습니다. 여수는 음식의 고장입니다. 하지만 같은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립니다. 이제 여수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는 이정현 전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웃 도시 순천을 모범사례로 꼽았다. 순천 예산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고 했다. “예산이라는 건 한번 상향조정 되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여수가 순천에 밀린다고 그는 생각한다. 

신 후보와 함께 시장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임영찬 후보. 여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수가 민주당 텃밭이라는 건 이제는 옛말이라고 했다. 시장 시의원 도의원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가 여수에 가장 많다는 점도 강조했다. 

▲ 무소속 임영찬 후보 
▲ 무소속 임영찬 후보 

여론은 어떨까? 충남 예산이 고향인 택시기사 박춘만 씨(63)는 37년 전 결혼하면서부터 처가인 여수에 정착했다. 신 후보 이야기를 꺼내니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는 아직 민주당 간판 없으면 당선되기 어려워요. 나머지는 그저 이름이나 알리려고 나온 거겠죠.” 

여수 토박이인 장형준 씨(69)는 사전투표를 했다. 여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될 거라고 말했다. 

여수 태생인 박태연 씨(55)는 1년 전 사업을 접고 택시 일을 시작했다. 영남에서는 민주당 시장이 나오는데 호남에서는 보수정당 시장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경상도 사람들이 얍삽하다면 전라도 사람들은 약간 바보스러운 면이 있어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지혜 씨(21)는 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투표할 생각이다. 공약집을 꼼꼼히 보겠다고 했다. 한빛서점 사장인 최바다 씨(40)는 여수가 크게 바뀐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뽑아놓고 보면 공약 안 지키는 건 매한가지라고 했다. 

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단지 입구. 주민 정성한 씨(66)는 “작대기만 꽂아놔도 민주당이 되는 만고불변의 현실이 여수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이제는 집권당이 된 국민의힘과도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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