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취업난은 이제 옛말일까. 일본의 취업 빙하기는 버블 붕괴와 저성장 기조가 겹친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저출생으로 청년 인구가 줄어든 2010년대 들어 해소됐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베이비붐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년부터 1949년 출생)의 정년퇴직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점도 이 시기 기업들의 고용 여력 확대에 기여했다. 인구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취업난도 개선됐다는 것이다.

앞서 <20대와 일자리> 1부에서는 한국의 구직난을 미국의 구인난과 비교해 소개했다. 2부에서는 마찬가지로 취업난이 해소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고용·일자리 이슈를 들여다본다. 

일본은 한국이 현재 겪고 있는 여러 사회현상을 앞서 겪은바 있다. 비슷한 점을 공유하는 만큼 일본의 경험이 한국의 취업난에 주는 함의를 알아본다. 이 기사에서는 일본 총무성,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조사의 취업관련 지표들과 일본 고용 제도에 대한 학술자료를 활용했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인 일본인과 재일교포 청년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피부로 느낀 일본의 ‘일자리’에 대해 들어봤다.

▲ (출처: Pixabay)
▲ (출처: Pixabay)

◆‘96%’ 완전고용의 함정 

작년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발표한 일본의 대졸취업률은 96%다. 이는 코로나 19로 인해 전년대비 2%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이를 두고 한국경제는 2021년 5월 기사에서 “2020년 취업률이 98.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 산정방식이 한국과 달라 발생한 착오다. 한국은 취업률을 계산할 때 대학원 진학생 등을 제외한 졸업자를 지표의 분모로 삼는다. 일본은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로 한정해 그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 예컨대 4년제 학부를 졸업하더라도 창업이나 유학 등의 사유로 취업의사가 없는 학생들은 분모에서 제외된다.

또한 일본은 한국처럼 전수 조사를 진행하는 대신, 약 1만 명가량의 소수의 표본만을 추출해 계산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계산법 때문에 버블경제 붕괴 직후에도 매년 90% 이상의 취업률을 기록했고, 특히 대량의 대졸 실직자가 발생해 취업난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2010년에도 일본의 대졸취업률은 95%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한국식으로 계산한 일본의 대졸취업률은 어떻게 될까. 2021년 문부과학성의 학교기본조사 통계에서 대학원 진학자를 제외한 대학 졸업자 대비 취업자 수를 계산해봤을 때, 일본의 대졸취업률은 87.8%다. 여전히 우리나라 대졸취업률인 75%를 상회하지만 기존에 발표된 96%의 완전고용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인구수가 한국의 2배 이상이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거대한 내수경제가 취업시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일본 청년들의 취업은 상대적으로 순조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뢰도가 떨어지는 수치를 들어 일본 내 청년 취업 문제가 해소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 여전한 ‘일자리 스트레스’

일본 청년들이 체감한 현실 역시 긍정적인 통계 전망과 달랐다. “취업난이 해소됐다고요?”도쿄에 거주 중인 스즈키(25) 씨는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구직활동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다. 분명 데이터 상에서는 좋아지고 있지만 취업이 수월하다고 실감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취업난 해소에 따라 줄어들었다고 알려진 청년 ‘프리터’도 여전히 많다. 프리터란 직업을 갖지 않고 평생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회인 아르바이터’로, 청년실업이 정점에 달했던 2003년엔 일본 15~34세 청년의 20%가 프리터란 조사도 있었다. 현재 스즈키 씨의 주변에만 2-3명 정도가 있고, 다른 일본 청년도 어림잡아 지인 5-10명 정도가 프리터로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에 거주 중인 재일교포 최민호(26)씨는 예전에 비하면 취업난 자체는 해소된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직업 선택 과정에서 업종, 회사 규모를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경우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는 조치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뒤 현재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다. “초봉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관심을 두는 일자리 관련 이슈를 묻자, 최민호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일본의 평균임금 수준은 변화가 없다. OECD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평균임금은 약 424만엔(한화 약 4457만원) 수준이다. 일본 기업 특유의 장기고용 형태가 업계 성장 둔화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총무성의 노동 시장 조사에서도 나타나듯, 생산성의 감소폭에 비해 작년 일본의 실업률은 2.8%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하는 ‘평생 직장’ 경향이 특히 강해 시장 변화에 대응할 역량이 줄어 임금도 동결됐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위축된 경제와 엔저 현상까지 맞물리자 임금을 조정해 부담을 줄이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본 기업의 특성과 대조적으로, 최근 일본 청년층의 이직률은 높다. 새로운 경향인 셈이다. 일본 총무성의 노동 시장 조사 결과 2020년 약 319만 명이 이직을 결정했고, 작년에만 약 15만 명의 일본 청년들이 입사 3년 안에 퇴사했다. 총무성은 전체의 40%가 넘는 기업들이 졸업 3년 이내의 ‘중고 신입’ 채용에 나서며 청년층 이직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내몰리듯 이직하는 청년들도 있다. 최민호 씨는 “일본 기업들이 성과 중심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성과를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이직을 하도록 떠밀리는 추세”라고 짚었다. 

‘아베노믹스’에 의한 경기 호조와 청년 인구 감소로 취업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주요 기업 입사나 일자리 안정성에 있어서는 일본 청년들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닌 셈이다. 

▲ (출처: 新卒watch)
▲ (출처: 新卒watch)

◆ 일본 취업 지원 시스템의 명과 암

일본 청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재학 중에 이미 취직 ‘내정’이 되는 셈이다. 올해 1월 문부과학성과 후생노동성은 작년 12월 기준 대졸 예정자의 취직 내정률이 83%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87.1%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년 동기와 비교해 0.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졸업 전 내정의 배경에는 일본의 독특한 청년 취업 지원책이 있다. 일본의 ‘신규 졸업자 취업시스템’은 기업과 학교 및 노동행정기관이 관여하는 사회적 장치다. 이 시스템 하에 대부분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시기에 맞춰 ‘사무계열’과 ‘기술계열’로 직종을 크게 구분하여 일괄채용을 실시한다. 노동행정기관은 대학에 ‘신규 졸업자 헬로워크(Hello Work: 공공직업안정소)’의 잡서포터(Job Supporter)를 통해 개별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대학과의 연계율도 높다.

고스기 네이코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JILPT) 특임연구원은 국제노동브리프 2018년 1월 호에서 “재학 중 구직-졸업 직후 채용의 시스템은 정년까지의 장기고용을 상정하는 ‘일본형 고용’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멀리 보는’ 고용형태가 전제되다보니 기업이 채용 후 인재 육성이 지체된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후생노동성 직업능력개발국의 조사에 따르면, 직원 규모가 5000명 이상인 기업의 경우 신입사원 훈련에만 평균적으로 1년이 넘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스기 특임연구원은 이를 “신규 졸업자를 장기적인 육성대상으로 간주할 뿐 빠르게 업무에 투입 가능한 인재로는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책을 통해 당장 취업은 수월할지언정 경직된 고용 구조 때문에 ‘일자리’ 환경은 아직 미진하다는 것이다. 

◆ ‘취뽀’ 이상의 질 좋은 일자리를

일본의 독특한 고용문화를 감안해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일자리 이슈는 시간차를 두고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는다. 

▲ 한국의 청년 생산가능 인구 변화 (출처: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
▲ 한국의 청년 생산가능 인구 변화 (출처: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

인구 감소 추세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2027년쯤이 취업난의 인구 구조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9년 조선일보에 "출생아 수가 외환위기 당시 60만 명대를 기록하다 2002년 40만 명대로 대폭 줄어들었고, 이는 신규 취업자 수가 3분의 2로 줄어드는 급격한 인구 변화"라고 말했다. 2002년생이 만 25세로 주 취업 연령층에 진입하는 2027년쯤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노동시장의 신규 인력 감소가 본격화될 거라는 이야기다. 이 시기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와도 맞물려 일본의 단카이 세대가 그랬듯 일자리 확대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구직단념자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점도 비슷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연간 구직단념자는 62만 8000명으로, 청년 구직단념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경연은 2020년 청년 구직단념자 수가가 5년 만에 18.3% 증가(21만9188명)했다고도 밝혔다. 일본은 일찍이 구직단념자 급증을 겪고 2003년 '청년자립·도전플랜'을 시작한 바 있다. 특히 후생성 위탁 지원기관인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은 현재 취업·취학을 중단한 청년에게 취업 후 정착까지 전문가가 전면적으로 백업하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한 바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1년 내 취업 성공 비율 85.6%를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은 일본의 청년 취업률은 인구 구조적 요인과 정책으로 취업 빙하기에 비해 개선되긴 했다. 그러나 일자리의 질 이슈는 여전히 문제다. 저조한 청년 취업률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때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되, 일자리의 질과 안전성에 대한 고려도 역시 반영되어야 한다. 일본이 인구구조의 변화에 더해 ‘신규졸업자 취업시스템’이라는 제도적 지원으로 취업난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취업 후 임금·교육 등의 부문에 미진했던 나머지 청년들의 고민은 온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 역시 청년 취업을 대할 때, 취업률만을 끌어올릴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일자리 환경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3부에서는 역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청년들의 평가와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어떤 것인지, 새정부에 바라는 일자리 정책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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