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는 세 가지 유형의 화장실이 있다.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그리고 모두의 화장실.

‘모두의 화장실’ 입구 표지판에는 픽토그램(그림문자) 6개가 그려졌다. 남성, 여성, 유아, 유아의 기저귀를 가는 사람, 휠체어를 탄 장애인, 치마와 바지를 반반씩 입은 사람 모양.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이나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이용하는 성중립화장실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가 3월 16일부터 설치했다. 성소수자가 마음 놓고 쓰는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생겼다. 이성 보호자와 함께 다니는 유아, 장애인, 노인도 이용할 수 있다.

▲ 모두의 화장실 표지판
▲ 모두의 화장실 표지판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있는 모두의 화장실 입구에서 버튼을 눌렀다.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세면대 2개와 변기, 간이 샤워 시설, 기저귀 교환대가 보였다. 휠체어용 손잡이가 모두 설치돼 있었다.

세면대 앞 거울을 살짝 눌렀더니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을 위해 거울이 아래로 기울어졌다. 휠체어 높이에 맞춰 화장실 벽면에는 비상통화장치를 2개 설치했다. 변기 옆에는 작고 낮은 세면대가 하나 더 있었다. 생리컵을 씻는 용도였다.

▲ 모두의 화장실 내부 
▲ 모두의 화장실 내부 

1시간 동안 봤더니 학생 12명이 1층의 남자 또는 여자 화장실을 사용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3명이 이용했다.

성공회대 1학년 김모 양(18)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반대하는 학생도 있지만, 마음과 몸의 성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성소수자처럼 보일 것같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문융합자율학부 김은영 씨(24)는 “학교 이념이 열림, 나눔, 섬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모두의 화장실은 당연히 설치돼야 한다”며 학교에서 가장 깨끗한 화장실이니 많이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모두의 화장실 설치는 쉽지 않았다. 이 사업은 총학생회 주관으로 2017년 시작했다. 학교의 비협조로 미뤄지다가 작년 12월 학교 사업으로 결정 및 추진됐다. 공사는 올해 2월 25일에 시작됐다.

2018년에 모두의 화장실 건립 TF팀장이던 한소망 씨는 “학교 본부가 학생과 합의를 해오라는 말만 했었는데 태도를 바꿔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 모두의 화장실 준공식 현수막
▲ 모두의 화장실 준공식 현수막

성공회대 총학생회의 이훈 인권위원장은 모두의 화장실 개소에 대해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로 2021년 5월 제3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모두의 화장실’ 안건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트랜스젠더 친구가 하루에 10시간씩 생리현상을 참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의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과 트랜스젠더의 숙명여대 입학 취소 사건을 보며 소수자에게 희소식 하나를 안겨주고 싶었는데, 정말 기쁜 소식이다.”

경희대 미래문명원의 이성훈 특임연구원(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본부장)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는) 소소한 변화인 것 같지만 인권은 먹고, 자고, 화장실에 가는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일상생활에서의 인권 감수성이 한 단계 진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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