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최예나 기자

 

2019년 7월 26일 전주 상산고에 대한 전라북도 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 신청이 최종 거부됐다. 교육부가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위법성이 있었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 결정으로 상산고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부의 결정 뒤에는 7개월간 끈질기게 이어진 동아일보 교육팀의 보도가 있었다.

자사고 보도를 시작한 사람은 최예나 기자였다. 2019년 1월 4일, 최 기자는 “확 높인 ‘자사고 기준’, 무더기 지정취소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 걸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각 시도교육청은 새로운 자사고 평가안을 만들었다. 확인해 보니, 전국 교육청의 지표가 조금씩 달랐다. 최 기자는 10개 교육청에 자료를 요구해 정밀하게 비교했다. 5년 전과 비교해 커트라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확인했다. 

커트라인은 5년 전보다 10점에서 20점까지 올랐다. 평가 대상인 자사고들은 새로운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고 항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진행되면 대부분의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이 문제를 주목하는 매체는 드물었다. 최 기자가 첫 기사를 내기까지, ‘새전북신문’을 제외한 어느 매체도 자사고 문제를 보도하지 않았다. 최예나 기자는 대표적인 자사고인 상산고에 집중했다. 보도가 계속되자 학교 측에서도 연락이 왔다. 학부모들 제보가 새로운 기삿거리가 되기도 했다. 

“70점 받은 학교는 자사고 유지되고 79.61점 상산고는 지정 취소 대상” 2019년 6월 20일 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2면에는 상산고의 평가 총점과 세부적인 지표별 점수가 보도되었다. 실제 점수가 공개된 건 처음이었다.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지표에서 점수가 가장 많이 깎였다. 상산고는 2003년 자사고로 전환된 학교여서 법적으로 사회통합전형 대상자를 선발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그렇게 불이익을 주었다. 교육부는 이러한 평가내용을 지정 취소 신청 ‘부(不)동의’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았다. 교육부는 상산고에 대해 사회통합전형 선발 여부로 점수를 깎은 것이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4월 15일 동아일보 근처 카페에서 최예나 기자를 만났다.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바로 앞이었다. 최 기자는 법조팀과 산업부에서 일한 3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교육 기자로 일했다고 말했다. 2009년 동아일보에 입사했으니, 이제 13년 차다. 

처음 이메일로 요청했을 때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럴 만큼 경력이나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사양했다. 다시 진지하게 부탁하자, 만나서 얘기하자며 장소를 알려줬다. 

▲ 최예나 기자
▲ 최예나 기자

최 기자는 성대한 포부로 교육 분야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이었었고 입시도 겪어 봤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취재원들은 24살의 젊은 기자에게 “결혼도 안 하고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애가 뭘 알겠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최 기자는 그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취재원들에게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그러니 가르쳐달라고 얘기했다.

“‘결국에는 기사로 보여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가 쌓이면서 신뢰도 쌓였다. “그래도 얘랑 얘기하면 뭔가 나온다”는 걸 보여주자 취재원들도 마음을 열었다. 그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했다. 그때 알게 된 한 장학사는 이제 교장이 됐다. 오래전 만난 취재원들은 기자 생활 내내 큰 자산이 되었다. 

“교육 문제는 모든 국민이 전문가예요.” 한국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대학진학률은 73.7%였다.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2020년 만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국가 중 1위였다. 입시 정책이 바뀌는 날이면 신문사 사내에서도 난리가 난다. “다 자기 애를 키우고 있잖아요.” 최 기자는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잘 써야 한다. 최 기자는 현장을 전하는 것을 첫째 원칙으로 생각한다. 교육부처의 발표 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의 생각은 어떤지, 새 정책이 실제로는 어떻게 시행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1월 29일 “몇학년 맡을지 몰라 원격수업 준비못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교사 7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저도 (원격수업 콘텐츠를) 미리 만들고 싶지만 몇 학년을 맡게 될지 정해진 바가 없다.” “이 조직(교사 조직)은 방학이면 학생들처럼 쉬려고 하지 스스로 나서서 뭘 하는 조직이 아니다. 지침이 없는데 누가 미리 영상을 만들겠느냐.” 교육부의 무대책을 비판하는 교사들의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도가 나간 뒤 강원교육청, 경북교육청, 부산교육청 등이 인사 발표를 2월 초로 앞당겼다. “새 학년 교육활동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게” 지원하는 뜻이었다. 

현장에서 시작되는 보도도 있다. 최 기자는 대입 수시 전형을 위해 교내 상을 남발하는 서울 강남구 고등학교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상이 집중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 19일 자 보도는 한 학부모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기획이었다. “한 엄마가 전교 1등이 상을 몇 개 받았는지 조사해서 ‘말도 안 된다. 한 명한테 몰아주는 거다’라며 이야기했어요.” 

그는 서울 강남·서초구 고교 26곳에서 5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준 교과와 비교과 상의 개수와 종류, 상을 많이 받은 학생들의 연도별 수상 현황을 파악했다. 교사들에게 안 좋은 소리도 들었다. “조사할 때 욕 엄청 먹었거든요. 학교에서 무슨 이런 조사를 하냐고.”

집요하게 취재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최 기자가 웃으며 답했다. “교육부에서도 제가 매일매일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하니까, ‘또 얘가’ 이런 느낌이죠.” 집요함은 결국 통한다고 했다. 매일 전화하는 기자를 취재원들은 귀찮아하면서도 신뢰했다. “어쨌든 내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얘가 그래도 모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했다. 취재원들이 새로운 사실을 먼저 알려주지는 않아도, 어떤 사실이 맞고 틀린지 정도는 확인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최 기자는 기자 일을 시작한 이래, 5월 1일 현재까지 2,967건의 기사를 썼다. 그 중 52%가 교육 기사다. 하루에 한 개씩은 기사를 쓴다. 할당량이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세운 목표치다. 최근 30일 간 37건의 기사가 나갔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현재 동아일보 교육팀은 최 기자를 포함해 두 명이다. 둘이서 매일 나가야 하는 기사 외의 아이템을 취재하기는 쉽지 않다. 기획 기사는 품이 든다. “학령인구 관련된 기획 기사라든지, 그런 건 (지방 대학에) 전화를 많이 돌려야 되는데 사실 인원이 부족하기는 해요.” 인력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은 아동의 학업적·심리적 어려움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해 보고 싶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했던 2020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애들은 정말 다르다고는 하더라고요. 더 어린애들보다도 동생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고.”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우려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엄마’의 눈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을 짚어보겠다는 최 기자의 네이버 기자홈 소개글이 떠올랐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에 마약 같은 매력이 있다며 웃었다. 다른 기자들은 알아내지 못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도하는 순간이 즐겁다. “이 내용은 아무도 못 쓴 거야, 이런 거. 독자들은 사실 잘 모르지만요.” 

“앞으로 기자를 할 거라면 남들이 쓰는 것 이상, 나만의 브랜드를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 기자는 ‘현장에서 집요하게’ 쓰는 교육 기사로 말한다. “단지 동아일보 최예나가 아니고 그냥 최예나로서 사람들한테 갖는 브랜드.” 

그는 시간이 흘러 어느새 고참 기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어디 가기 힘들 것 같고 여기서 열심히 해야죠.” 앞으로도 교육 기자 최예나의 브랜드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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