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 있는 ㈜베어베터 본사를 찾았다. 3월 16일이었다. 건물 8층의 직원 휴게실에 10명 남짓한 직원이 모여 있었다.

한쪽 벽에 ‘베어베터 직원의 약속’ 포스터가 보였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일을 할 때는 팀에서 안내하는 순서와 방법을 지키며 일합니다. 직장인으로서 예절을 지킵니다.”

▲ 베어베터 직원의 약속 포스터
▲ 베어베터 직원의 약속 포스터

베어베터 직원 340여 명 중에서 240명은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은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한다.

베어베터는 2012년 5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제이앤조이’라는 인쇄소로 시작했다. 지금은 인쇄, 제과, 화훼, 배송, 카페, 사내 매점으로 사업 분야를 늘렸다. 모든 부서에서 비장애 직원과 발달장애 직원이 협업한다.

베어베터는 연계고용 부담금 감면제도를 바탕으로 주로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한다. 연계고용 부담금 감면제도란 기업이 직접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도 장애인 사업장과 거래하는 경우 장애인고용부담금 납부 의무를 감면받는 제도다. 상시 1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사업장은 장애인고용부담금 납부 대상이다. 이런 기업이 베어베터의 거래처가 된다.

▲ 베어베터 직원 휴게실
▲ 베어베터 직원 휴게실

인쇄팀 황석휘 씨(34)는 오전반과 오후반에서 각각 4시간 일한다. 2014년 입사해 오후반에서 일하다가 2017년 7월 1일부터 8시간 근무하는 직원으로 승진했다. 그는 출력 보조 일을 한다.

“종이별로 마쉬멜로우라든가, 선샤인이라든가, 반누보라든가 이렇게.” 황 씨는 명함 제작에 사용하는 종이 이름을 줄줄 읊었다.

베어베터와 거래하는 기업은 제각기 다른 종이와 다른 크기의 명함을 주문한다. 황 씨는 기업별로 다른 명함의 종이 종류와 크기를 외웠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필요한 종이를 골라낸다.

인쇄팀 사무실에는 열댓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사무실 안쪽 철제 선반에는 종류에 따라 구분한 종이 뭉치가 빼곡했다. 그곳이 황 씨의 작업장이다.

▲ 황석휘 씨가 일하는 모습
▲ 황석휘 씨가 일하는 모습

베어베터의 비장애 직원인 경영지원팀 모민희 매니저(30)는 발달장애인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업무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배송 업무예요. 많은 발달장애인이 지하철을 참 좋아해요. 여러 노선의 노선도를 다 외우기도 하고요. 심지어는 차의 기종까지 외우는 경우가 있어요. 몇 번을 탔는지 번호도 늘 적는 분도 있고요.”

발달장애인 일자리는 부족하다. 작년 5월 31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표한 ‘2020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한국의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은 20만 4924명이다. 이 중 24%(4만 9120명)가 취업했다.

미취업자 중 취업을 원하는 비율은 45.8%에 이른다. 발달장애인 7만 1309명이 취업을 희망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기업은 장애인이 맡을 만한 직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작년 12월 23일 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장애인 상시근로자 1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전체의 4.3% 수준이다.

장애인 미고용 업체의 77.3%는 장애인을 고용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주된 이유는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부족하거나 찾지 못해서였다.

장애인 단체는 기존 업무를 장애인이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베어베터의 업무는 세분화와 분업화가 특징이다. 비장애인 1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세분화해서 장애인 여러 사람이 하도록 나눴다.

“비장애 직원 혼자서 카페에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전달하는 역할을 모두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역할을 (발달장애 직원이 잘하도록) 나눴다는 거죠. 주문을 받는 직원 1명, 커피 내리는 직원 1명, 손님에게 전달하는 직원 1명.” 모민희 매니저의 말이다.

황 씨도 “(인쇄된 명함을) 잡는 거랑,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 (인쇄를 마친 명함 더미에) 이름이 섞여 있는지 안 섞여 있는지 확인하고, 명함을 고무줄로 묶어서 검수대에 놓고, 배송팀에 전달하는” 일을 각각 다른 직원이 맡는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황 씨는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이라고 답했다. 베어베터를 만든 목적이 발달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인데, 김정호 이진희 대표의 신념이라고 모민희 매니저는 설명했다. 실제로 코로나 19로 매출이 줄었지만 원치 않는 휴직을 하거나 해고된 직원은 1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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