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일주일이 지난 3월 3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 대사관 앞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대사관 앞 경비는 삼엄했고, 경찰 뒤로 보이는 대사관 문은 굳게 닫혔다.

대사관 앞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배경으로 만든 포스터를 들고 시민 10여 명이 시위를 했다. 포스터에는 ‘전쟁 반대’, ‘Stop War’ ‘Putin Out’ 같은 문구가 보였다.

▲ 주한러시아 대사관 앞의 반전 시위
▲ 주한러시아 대사관 앞의 반전 시위

시위에 참여한 안중규 씨(61)는 “러시아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가 학교와 병원 같은 민간 시설을 공격했다며 “푸틴은 전쟁범죄자”라고 주장했다.

손편지운동본부의 이근호 대표(64)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손편지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2015년에는 시리아 난민을 위해, 2017년에는 멕시코 지진 피해자를 위해 손편지를 보내는 활동을 했다.

이 씨는 대사관 앞을 지나가는 시민에게 검은색 바탕의 도화지를 건네고 무지갯빛 펜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검은 도화지가 무지갯빛 글씨로 덮이는 것처럼 우크라이나에도 밝은 희망이 찾아올 것을 염원한다.”

시위 현장에는 러시아인도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출생인 볼코고노프 안드레이 씨(49)는 자신의 러시아 여권을 손에 들고 시위를 했다. 아내가 한국인이라며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명분 없는 이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 손편지 운동을 기획한 이근호 씨(왼쪽)와 러시아 여권을 들고 시위하는 볼코고노프 안드레이 씨
▲ 손편지 운동을 기획한 이근호 씨(왼쪽)와 러시아 여권을 들고 시위하는 볼코고노프 안드레이 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보름이 지난 3월 11일 저녁 7시. 주한러시아 대사관 앞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국제민주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국YMCA전국연맹,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가 주도했다. 전쟁이 멈출 때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집회를 계속할 예정.

이날 집회에는 시민 100여 명을 비롯해 미국 영국 폴란드 몽골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참여했다. 폴란드인 피오트르 크롤 씨(45)는 러시아의 명분 없는 침략행위와 전쟁범죄를 규탄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나섰다고 했다.

몽골에서 왔다는 바트자르갈 빌군 씨(34)는 “러시아의 정당성 없고 불법적인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묵과한다면, 나쁜 선례를 만드는 셈이라고 했다.

▲ 러시아 대사관 앞 촛불집회 현장
▲ 러시아 대사관 앞 촛불집회 현장

서울 용산구의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은 달랐다. 기자가 3월 3일 찾았을 때, 대사관 입구에는 응원 메시지와 편지, 꽃다발이 가득했다.

‘우리가 함께해요’, ‘우크라이나와 함께’, ‘We stand with you’ 같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또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란 해바라기가 보였다. 한쪽에는 생수와 컵라면, 과자 같은 구호품이 수북했다. 시민이 보내는 택배는 대사관 앞에 계속 도착했다.

▲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의 응원 메시지와 꽃다발
▲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의 응원 메시지와 꽃다발

명지대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다 휴학 중인 오재용 씨(23)는 지하철을 타고 도착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옷을 각각 상하의로 입은 레고 인형을 가져와 대사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오 씨는 레고 인형이 들고 있는 깃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담기 위해 사진을 합성하고, 동호회 블로그에 게시할 예정이다. 오 씨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슈를 한 번이라도 검색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레고 동호회의 오재용 씨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 레고 동호회의 오재용 씨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대학원생 안교원 씨(27)는 러시아의 침공에 의연하게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응원하기 위해 대사관을 찾았다고 했다. “독재자의 만족을 위한 군사행동에 민간인을 비롯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며 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안 씨는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에 기부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우크라이나에 기부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기부를 인증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중이다. 배우 이영애, 배우 겸 래퍼 양동근, 배우 겸 가수 임시완 등이 기부금을 전달하며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했다.

▲ 시민이 보낸 택배가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에 도착했다.
▲ 시민이 보낸 택배가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에 도착했다.

문의가 이어지자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은 국내 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했다. 대사관은 3월 3일을 기준으로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부금 8억 800만 원(미화 약 67만 달러) 이상이 모금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기부에 참여한 대학원생 김준용 씨(31)는 넷플릭스에서 영화 ‘윈터 온 파이어(2015)’를 보고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생겨 2018년에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결속력과 용기에 놀랐다”며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민철 씨(30)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며 “소액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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