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마포구청역 2번 출구 앞에서 전상호 씨(70)를 만났다. 2월 19일 오후 2시였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영하 4도.

그는 스마트폰을 들고 2번 출구와 100m쯤 떨어진 건물을 찾았다. A 오피스텔 202호. 배송 물품을 받아야 하는 장소였다. ‘201-3호’라고 쓰인 문 앞에서 그는 “201호부터 203호까지 있다는 건가?”라며 벨을 눌렀다. “여기 아닌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2호를 어렵게 찾아 물품을 받고 그는 “이거 힘드네요”라며 웃었다.

전 씨는 2주 차 지하철 택배원이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므로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뇨가 있어서 운동 겸 돈도 번다는 생각으로 해요. 딱히 힘들지는 않아요”라고 답했다.

▲ 지하철 택배원 전상호 씨
▲ 지하철 택배원 전상호 씨

지하철 택배는 지하철로 수하물과 서류를 배달하는 서비스다. 경로 우대권으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 많이 한다.

전 씨는 25살 때부터 시내버스를 몰다가 퇴직하고 10년간 대리운전 기사로 일했다. 만 68세가 되면서 대리운전자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새 일자리가 필요해 구청에서 방역 소독 업무 근로자로 5개월 반을 일했다. 아내는 청소 일을 한다. 전 씨는 지하철 택배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둘 다 일을 그만두면 당장 생계가 어려워요. 나중에 연금이 모자라면 몰라도 지금은 자식들한테 최대한 손 벌리고 싶지 않아요. 70대가 넘어간 남자 노인은 일이 거의 없는데 지하철 택배는 크게 힘들지 않고 할만하니까 다행이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70대 이후 노인의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노무종사자다. 급여 수준과 일자리 안정성이 낮지만 생계유지용 자금이 필요한 노인에게 중요하다.

지하철 택배는 민간기업, 노인일자리지원기관, 사회적기업이 운영한다. 특히 지하철이 많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한국시니어클럽협회는 “전국 192개의 시니어클럽 중 지하철 택배 사업을 하는 곳은 13개로 모두 서울에 있다”고 밝혔다.

▲ 실버퀵의 배기근 대표
▲ 실버퀵의 배기근 대표

지하철 택배 ‘실버퀵’을 2001년 세운 배기근 대표(73)는 약 30명의 노인 택배원을 두고 있다. 평균 연령은 70세, 최고령자는 83세다. 택배원과 업체가 배송비를 7대3 비율로 나눈다.

배 대표는 “택배원은 보통 한 달에 100만~150만 원까지 벌어요. 출근자 우선으로 업무가 배정돼서 많이 벌고 싶은 분은 출근 시간이 아침 9시인데도 7시에 사무실에 와요”라고 말했다.

민간기업 택배원으로 일하는 노인은 수수료가 높아도 생계 자금 마련이 가능해 대체로 만족한다고 한다. 배 대표는 “정부 지원 사업은 근무 기간이나 벌 수 있는 금액이 제한돼 노인이 별로 원하지 않고 민간기업 택배를 선호해요”라고 했다.

서울 동작구 어르신 일자리 센터는 2021년 4월부터 ‘거북이 택배’를 운영한다.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기본급을 지급한다. 택배원으로 일했던 노인의 약 90%가 올해 재신청했다고 한다.

어르신 일자리 센터의 지하철 택배 사업 총괄 매니저인 박윤희 씨(40)는 “한 달에 8번, 하루 3시간씩 시급(時給) 1만 원을 기본급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배송비의 80%를 어르신에게 배송 수당으로 추가 지급한다”고 말했다.

소셜벤처 ‘두드림퀵’ 팀원 장수민 씨(21)는 대학 동기 5명과 지하철 택배 사업에 나섰다. 5%의 값싼 수수료로 택배원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자체 앱을 개발해 노인의 디지털 리터러시 함양에 힘썼다.

‘두드림퀵’은 수익성과 택배원 공급 불균형 문제 등으로 택배 사업을 2월 28일 마무리했다. 장 씨는 “다행히 이제 저희가 나서서 홍보하지 않아도 다양한 지하철 택배 운영체가 자체 주문처를 갖고 있다. 이제 다른 시니어 일자리를 개발하려 한다”라고 했다.

▲ 국내 택배 물동량(출처=한국통합물류협회)
▲ 국내 택배 물동량(출처=한국통합물류협회)

지하철 택배 사업은 국내 택배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노인 일자리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보행 능력이 있고 지도를 잘 활용한다면 연령대와 성별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특별한 인허가가 필요하지 않아 민간기업도 마음만 먹으면 창업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 경로 우대권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게 타당하냐는 견해도 나온다. 소셜벤처를 운영하던 장수민 씨는 “노인이 무임승차로, 즉 국민 세금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부정적 인식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9)는 “지하철 택배 일자리를 온정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경쟁력을 인정받는 사업이자 필요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며 “노인의 일자리 품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동행 취재한 택배원 전 씨는 마포구청역에서 출발해 서울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 내려 택배 물품을 무사히 건넸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냐고 물으려는데 전 씨의 휴대폰에 택배 알림 문자가 떴다. ‘강변역에서 경찰병원역까지.’

전 씨는 “오늘은 유난히 바쁘네요”라며 강변역으로 떠났다. 서초역-논현역-청계산역-가산디지털단지역-부평역-신촌역-마포구청역-아차산역-강변역-경찰병원역. 그는 이날 지하철역 10곳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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