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뭘 배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에 우울감과 고립감을 느낍니다.”

강원 화천에 사는 김주현 씨(가명·26)는 3년 전 병무청 병역판정검사에서 경계선지능(4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장기대기 상태로 병역 면제가 유력하다.

그는 요즘 집에만 머무른다. 최근에는 제과제빵 기능사를 알아봤다. 서울까지 가서 학원에 등록했는데 이틀 만에 그만뒀다. 수업 내용이 어렵고 집중력이 부족해서다.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지난해에는 컴퓨터활용능력 1급 시험에 도전했다. 필기를 통과했어도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던 탓에 실기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계선지능 오픈카톡방’에서의 채팅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의 교류는 거의 없다. 김 씨는 “부모님은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 경계선지능인이란?
▲ 경계선지능인이란?

경계선지능인은 지적장애에 해당하지 않지만 평균지능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지능지수(IQ) 70~85의 범위에 있어 ‘느린 학습자’로 부르기도 한다.

경계선지능은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일찍 진단받고 체계적인 교육과 치료를 받으면 학습 능력을 향상할 수 있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반면 공부를 못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로 인식되고 방치되면, 지능이 더 떨어져 지적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이 경계선지능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아이가 경계선지능임을 알아도 부모가 받아들이지 않아 경계선지능의 선별 자체가 어렵다.

청년숲 협동조합의 김상미 이사는 “경계선지능인이 13%라고 하는데, 진짜 발굴된 건 1%도 안 될 것”이라며 “자녀가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고 따돌림 등 친구 관계에서 문제를 겪어도 명백한 장애가 원인이 아니면 부모는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남대 주은미 연구원(특수교육재활연구소)은 “지적장애에 가까운 지능지수 75 이하의 아이들보다 정상지능인 85에 가까운 ‘약간 늦구나’, ‘약간 공부 못하네’ 싶은 얌전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더 방치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학교 밖 청소년과 학교를 졸업한 경계선지능인이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지원하는 기관과 단체가 적은데, 그마저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경계선지능 자녀가 성년이 되면 부모는 ‘포기’와 ‘평생 양육’의 기로에 선다. 제도권에서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어서다.

김상미 이사는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포기하고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청년숲, 동대문복지관, 성북시민회, DTS행복들고나 등에 연락한다”라고 말했다.

일부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에 장애등급 판정을 받도록 한다.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취업 알선, 의료비 지원, 장애 수당 및 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다.

김상미 이사는 “이때까지 한 번도 특수학급에 있지 않았고, 그쪽으로 혜택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신청하면 여러 번 반려된다”라며 “교사들이 생활기록부를 잘 써주기 때문에 장애 인정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양지범 씨(가명·24)의 꿈은 자립이다. 3년제 전문대 전산세무학과 졸업반. 남보다 지능이 낮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 대부분 시간을 전공 공부에 투자한다. A+를 받은 과목도 많다.

그는 “경계선지능인도 의지가 있고 노력만 하면 못 할 일은 없다”면서도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고 싶지만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기업에서) 안 뽑아 줄 걸 안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양 씨는 병무청 병역판정검사에서 경계선판정을 받았지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현역으로 복무하고 전역했다. 양 씨는 부모에게 평생 의지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어떤 일이든 기회가 주어지면 할 생각이다.

경계선지능 청년도 바리스타처럼 보통 청년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나 직업을 선망한다. 그러나 교육을 반복해서 받아도 취업 시장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동대문복지관에서 경계선지능 청년의 직업교육을 담당했던 이선호 대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들 머릿속에 바리스타란 커피만 만드는 사람이다. 직무 교육을 하고 실습을 나갔을 때, 사장님이 ‘바리스타는 매장 청소도 하고, 손님 응대도 하고, 카드 계산도 다 할 줄 알아야 돼’라고 말했다. 이 친구들 반응은 ‘저 바리스탄데 왜 커피 안 내리고 맨날 청소만 시켜요?’였다. 복합적인 상황 판단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동대문복지관에서 디자인 수업을 맡은 황혁주 리페어라이프 디자인 대표는 “포토샵과 일러스트 같은 프로그램은 금방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창의성과 응용력이 떨어져서 자기 나름대로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작업까진 힘들다”고 지적한다.

사업주가 경계선지능인을 고용할 인센티브가 없는 점도 문제다. 장애인이나 일반인을 고용하는 편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면 고용장려금을 받는다. 경계선지능은 법적으로 비장애인이라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해 통과된 ‘서울특별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안’에 따르면, 서울시의 평생교육 지원센터는 ▲ 경계선지능인 선별 및 지원 ▲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프로그램 개발, 운영 및 지원 ▲ 경계선지능인 가족 및 관련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교육 지원 업무를 맡는다.

이 조례를 발의한 채유미 서울시의원은 “경계선지능 성인의 발굴을 돕고, 상담과 치료를 시가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과 취업이 별개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청년행복학교 별의 안은비 교사는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돈을 벌어야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당사자가 원하는 건 자립이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취업”이라고 강조했다.

주은미 연구원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 서비스를 경계선지능인에게 점차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맞춤형 직무 교육과 함께 장기 인턴십 과정, 코디네이터의 배치도 필요하다고 주 연구원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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