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리장성 팔달령
▲ 만리장성 팔달령

만리장성(萬里長城). 중국에서는 그냥 창청(長城)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The Great Wall of China이다. 인류의 7대 불가사의로 한때 지구 대기권 밖에서도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최초로 유인우주선에 탑승한 양 리웨이에 의해 가짜뉴스로 확인됐다.

이러한 속설은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라는 저서에서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지구 궤도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퍼졌다. 세이건이 우주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요하네스 케플러의 <솜니움(Somnium‧꿈)>이란 공상과학소설의 내용을 인용했다. (Sagon, 2013, Cosmos, p. 68). 만리장성이 <코스모스>에 등장한 배경이다.

중국 당국은 2월 20일 막을 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자 베이징에서부터 장자커우(張家口, Zhangjiakou)까지 고속철도를 신설했다. 전에는 이 구간이 4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1시간 내로 돌파한다. 새 열차의 최대시속은 350㎞이다. 장자커우역에서 2㎞ 떨어진 지점에 타이즈청(太子城‧Taizicheng)이란 올림픽 빌리지가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9년 12월 30일에 개통한 이 고속열차와 인근지역 개발을 위해 중국은 100억 달러 가까이 사용했다. 북 베이징역에서 북서쪽으로 50분 달리면 타이즈청에 도달한다. 옌칭(延慶‧Yanqing)과 함께 이번 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이곳에서 스키와 스노보드 경기를 포함한 알파인 게임이 열렸다. 중국은 이 구간 주위에 풍력발전소를 세우고 새롭게 단장했다. 해발 900m의 만리장성에서 426m 아래로 12㎞ 달하는 터널까지 뚫었다(Chris Buckley, China’s Fastest Olympics Entrant? Climb Abroad, New York Times, 2022, 2월 18일) 

▲ 장자커우 올림픽공원(출처=뉴욕타임스)
▲ 장자커우 올림픽공원(출처=뉴욕타임스)
▲ 베이징올림픽 고속철도 안내지도
▲ 베이징올림픽 고속철도 안내지도

장성은 얼마나 긴가. 1리는 360보로, 중국에서는 500m로 계산한다. 1만 리이니 대략 5000㎞이다. 중국문물국(中国文物局‧문화재청)은 2012년에 2만 1196㎞라고 발표했다. 과장된 수치임이 분명하다. 장성뿐만 아니라 중국 내 모든 성의 길이를 합해도 과연 이 수치가 나올 지 의심스럽다.

서울에서 뉴욕까지 일직선 거리가 1만 1046㎞이며, 비행기로 약 7000마일이 나온다. 장성이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서울에서 뉴욕까지의 왕복 거리가 될 수가 없다. 이 발표 3년 전인 2009년 9월 25일에는 CCTV2를 통해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했던 명나라 시기의 장성 길이가 8852㎞라고 발표했다. 역시 부풀린 숫자다.

만리장성은 중국 동쪽 끝인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끝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간쑤성(甘肅省)의 자위관(嘉峪關‧Jiayuguan Pass)까지 걸쳐있다. 황해에서 북쪽 내륙 깊게 위치한 보하이만(渤海灣‧Bohai Bay)에 접한 라오롱터우(老龍頭)가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이다. 이곳에서 자위관까지 길이가 2238㎞다.

북쪽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성곽이니 지형에 따라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세로 방향으로 세워진 성곽도 있다. 그래도 직선 길이의 2배가 넘는 5000㎞가 될 수가 없다. 우리 식으로 1리를 392m로 계산해 1만 리이니 4000㎞에 가깝다. 이 수치가 장성의 합리적인 길이로 보인다.

지도를 보면서 꼼꼼히 장성의 길이를 따져 보았다. 과거 기록에는 보통 5000~6000㎞로 나타났다. 2009년 발표에서 갑자기 이 숫자에 2500㎞ 이상을 덧붙였다. 2012년 발표에서는 2009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이와 함께 장성의 동쪽 시작을 산하이관에서 호산산성으로 바꿨다.

여기서 중국의 동북공정 의도와 역사 왜곡의 단면을 엿보게 됐다. 호산산성은 고구려 산성이었다. 지금은 기록에만 남아 있지만 요동 단둥 지역에 속한 압록강 근처에 소재했다. 그런데 이 산성을 중국식 성으로 복원해 현판에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새겨놓았다. 나아가 이곳을 장성의 동쪽 시작점이라고 새롭게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호산산성의 인근에는 ‘마치 옥수수 알처럼 앞은 볼록하고 뒤는 뾰족한 쐐기형의 돌’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명나라의 장성은 토성이다. 흙과 지푸라기로 속을 채우고 벽돌로 지지대를 쌓는다.

고구려성은 쐐기돌로 축조되며 품자 형으로 쌓아 올렸다. 이 쐐기돌은 중국이 복원했다는 호산장성이 원래 고구려의 호산산성이 위치했던 자리임을 보여 준다. (참조=KBS 역사스페셜- 고구려성, 만리장성으로 둔갑하다)     

▲ 만리장성과 황허강 지도(출처=Pinterest)
▲ 만리장성과 황허강 지도(출처=Pinterest)

이러한 논란이 일기 전인 1987년에 만리장성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마오쩌둥은 동쪽 시작점인 산하이관에서 ‘장성에 가보지 않은 자, 사내대장부(好漢)라 할 수 없다(不到長城非好漢)’는 휘호를 남겼다. 산하이관에 가면 큰 돌에 새겨진 글자를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을 두 번 갔으나 “아 이게 인구에 회자 되는 장성이구나”라는 소감만 들었다. 미국 서부의 그랜드캐년(Grand Canyon) 국립공원을 처음 갔을 때와 비슷했다. 그랜드캐년 최상의 전망대인 사우스 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동차로 8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그 웅대한 자태를 바라본 후에는 간 거리만큼 그냥 다시 돌아왔다. 저명한 관광지를 갈 때는 사전 학습은 물론 무엇을 봐야할 지 스케줄을 잘 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서너 번을 가보고나서야 자연이나 문화유적의 진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중국은 만리장성이란 세계의 문화유산을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의 왜곡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시진핑이 중국 서북부의 환경개선을 위해 대내외에 공언했던 ‘단순하고 안전하며 화려한(Simple, Safe, Splendid)’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의도와도 어긋난다.

▣ 만리장성 주요 포인트

▲산해관(山海關‧Shanhaiguan Pass)=라오룽터우(老龍頭)와 천하제일관에서 만리장성이 시작한다. 이곳을 뚫고 청나라 섭정왕 뚜어얼군(多爾滾)이 명조를 무너뜨렸다고 한다.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이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김학준 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산하이관이야말로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는 경계선’이라고 강조했다.

▲ 팔달령(八達岭‧Badaling)=명대에 건설된 만리장성의 구간으로, 보존상태가 좋다. 베이징에서 60㎞ 떨어졌다. 이 구간 길이가 3.7㎞이다. 하이킹에 적당한 거리지만 관광객이 붐벼 움직이기조차 힘들다. 춘추전국시기에 지어졌다가 명나라 홍치제 18년인 1505년에 다시 축조됐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보수했다. 베이징에서 가까워 관광객이 쉽게 다녀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갔을 때 인산인해였다. 만리장성 박물관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단체로 갔기에 살펴보지 못했다.

▲ 금산령(金山岭‧Jinsanling)=금산령 장성은 약 20㎞ 거리로 축조됐다. 성 위에는 5개 요새와 2개의 봉화대 그리고 다양한 망루가 있다. 일부가 무너지거나 훼손됐지만 팔달령과 달리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비교적 한산하다고 한다. 장성에서 하이킹을 즐기려면 방문할 만하다.

▲가욕관(嘉峪關‧Jiayuguan)=중국말로 자위관으로 불린다. 명나라 때 건축된 만리장성의 서쪽 끝의 성곽이다. 간쑤성 서북부에 위치한다. 역대 왕조가 이 지역을 요새화하고 병력을 배치해 흉노족과 몽골족을 포함한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대비했다. 가욕관 성루는 실크로드의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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