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9월 사망하기 직전까지 미국의 10대들을 열광시켰던 '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그를 생각하면 우수에 가득 찬 눈빛과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잠바와 오토바이가 떠오른다. 영화 '비트'에서 반항기 짙은 '이민'역으로 열연한 정우성.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하늘로 향 한 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 젊은이들 가슴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토바이를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들 반항아들은 화려해 보이지만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뜨거운 열정을 느낀다. 

To ride or not to ride
오토바이 동호회 「철조망」.그들은 신림동에 위치한 자신들만의 공간을 '놀이방'이라 불렀다. 주황색의 밝은 간판과는 대조적으로 침침한 실내조명과 어지러운 분위기가 처음 온 사람을 당황케 한다. 벽에는 가죽잠바들과 헬멧, 벨트 등이 걸려있고 거울이 늘어서 있는 또 다른 면에는 위에는 회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은 회원 중 사진작가가 있기 때문이란다. 바닥에는 연장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방 깊숙한 곳 석유난로 주변에 가죽잠바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 담배를 피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다. '살기위해 타고, 타기위해 산다'는 철조망의 동호인들이다. 처음에 느꼈던 어두움과 난해함은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철조망은 바이크 샵이 아니다. 오토바이 타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시간 날 때마다 들려서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주고받을 수 있는 바이크 매니아들의 동호회이다. 철조망의 모체는 할리(Harley-Davidson) 매니아들이였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가 몰던 멋진 오토바이를 기억하는가. 기종은 다르지만 그것이 바로 Harley-Davidson Motorcycle의 제품이다.
 
 놀이방을 이용하는 회원 중 약 80%가 할리 매니아들이지만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대환영이다. 인터넷 동호회(www2.onnet.co.kr/~cjm)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대부분은 단순히 바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고등학생에서부터 교수, 변호사, 의사, 화가 등 각기 다른 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오직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대부분 직장인이기 때문에 매주 토요일 모임을 가진다.

회원 대부분이 까만 가죽잠바를 입고 있다. 썬글라스까지 멋들어지게 갖추고 있는 이도 있다. "가죽잠바를 입는 이유요? 넘어졌을 때 덜 다치거든요. 썬글라스도 바람에 눈을 보호하죠. 물론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안전이 더 큰 이유입니다." 오토바이를 탄지 10년째라는 이상헌(33)씨의 말이다. 폼이려니 하고 넘어 가려했는데 신체보호가 주목적이라니 일석이조의 효과다. "오토바이도 모터 스포츠의 일종이죠. 할리에 몸을 싣고 달리다 보면 무한한 자유를 느낍니다. 또 스트레스 푸는데도 그만이고요." 할리를 탄다고 하면 사람들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저희의 자랑이자 독특한 점은 바로 거의 대부분이 자가정비를 한다는 거죠. 부품도 국산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굳이 비싼 것을 고집하지 않으니 별로 돈들 일도 없어요." 할리는 모델도 다양하다. 그곳에 있는 오토바이 모두가 조금씩은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할리를 고집한다. 젊은이들의 오감을 흔들어 깨우는 Harley의 Trade Mark인 폭발적인 배기음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일제보다 느리며 엔진음이 크고 쓸데없이 무겁다는 단점이 있어요. 잘 서지도 않고. 하지만 오히려 우린 할리의 굉음을 즐겨요. 시동을 걸 때 전해오는 진동과 소리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타본 사람만이 그 참 맛을 알 수 있다니까요." 정해상(26)씨의 말이다. 타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할리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한다. 할리를 타는 사람들만의 자존심도 있다. 그래서 경찰의 싸이카를 만나거나 또 다른 할리를 만나게 되면 서로 수인사를 한단다. 같은 할리이면 딱지 끊을 일이 있어도 봐주는 건 아닌지.

 오토바이를 타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멋쩍어하며 씩 웃어 보인다. "어렸을 때 동네 아저씨분 오토바이를 잠시 빌려 타곤 했었죠." 웃음을 지으며 편집을 요구하는 모습이 뭔가 뜻 모를 음모라도 숨겨져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은 그냥 호기심에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지만 임태양(33)씨의 경우는 동기가 특이하다. "어렸을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었어요. 대학생이 되어선 불편한 다리를 끌고 캠퍼스를 다니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타기 시작한 것이 오토바이인데, 신기하게도 오토바이를 타고나서부터 걷는 것이 나아지더군요. 오토바이도 타고 다리도 낫고."

 임태양씨의 오토바이와의 인연은 단순한 레저를 넘어선 자아의 실현으로도 이어진다. 장애를 극복하게 해준 오토바이를 이용해 또 다른 꿈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화가인 자신의 그림솜씨를 이용해 오토바이에 색깔을 입히는 아트 페인팅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20대적 모습과 부인의 얼굴을 그려놓은 오토바이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한편의 휴먼 드라마와 같다고 할까. 처음에는 온전한 다리 역할을 하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참으로 아낌없이 주는 오토바이다.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얼굴에 맞는 바람이란….그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내가 원하는 곳에 얼마든지 바이크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언젠가는 우리 나라에서도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날이 오겠죠. 탁 트인 공간에서 마음껏 달려보고 싶습니다." 경계선 너머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철조망」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박성갑 팀장의 말이다.

오토바이를 타므로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사람들,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생활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이들, 이들이 바로「철조망」의 사람들이다.

이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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