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이 집회 참가자로 붐볐다. 의자가 한 줄에 10개씩 24줄 놓였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참가자 사이의 거리는 20㎝가 안 됐다.의자에 앉지 못한 참가자는 뒤쪽 공터에 서거나 화단 앞 돌 위에 모였다. 어림잡아 400명은 넘어 보였다. 중간중간 구호를 외치거나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이날 집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1개월 만인 4월 18일 전면 해제되면서 열렸다. 정부는 행사 및 집회를 인원 제한 없이 열도록 허용했다.3개월 전만 해도 제한된 인원만 집
대학생 김예은 씨(22)는 시험 기간 내내 노트북 앞에서 과제를 했다. 여느 대학생과 비슷했다. 무릎에 앉은 아들 박주안 군(1)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눕혀놓으면 깨니까 온종일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아들을 돌보며 과제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대학생이자 엄마. 김 씨처럼 아이를 키우며 학업을 계속하는 부모를 해외에서는 ‘스튜던트 맘’(Student-Mom)이라 부른다. 국내에서 이런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유추할 수는 있다.고등교육법에는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
이금옥 씨(69)에게는 집이 없다. 그는 컨테이너와 친구 집, 장례식장을 떠돌며 지낸다. 3월 5일 한밤중에 불이 산을 타고 내려왔다. 이 씨가 운영하던 펜션 일부가 불에 탔다. 펜션 앞에 지은 3채의 조립식 건축물은 전소됐다. 그중 하나는 이 씨의 집이었다.그는 악몽같은 그날 새벽을 기억한다. 코로나 19 백신을 접종하고 몸이 좋지 않아 서울 며느리 집에 머물렀다. 화재 뉴스를 보고 휴대전화 폐쇄회로(CC)TV 앱으로 강릉 집을 확인했다.산꼭대기 불이 바닥 솔잎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불티가 날려 언덕
민서희 씨(22)는 두 달 전, 초등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공립학교 교사 자격이 생겼는데 걱정이 여전하다. 1년간 임시로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이다.그는 서울의 사립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이 학교의 유일한 기간제 교사. 발령을 기다리며 경험을 쌓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무를 시작했다.초등교사 발령은 2022년에 5월 3일 기준으로 7회 있었다. 3월 발령에서 2022년 합격자는 없었다. 모두 2020년도와 2021년도 합격자였다.작년 합격자 중에서 일부는 여전히 발령받지 못했다. 시험 성적순으로 학교를 배정받으니 성
“안녕하십니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OOO입니다. 저희는 정치사회 분야와 관련해….”“뚜뚜….”직장인 이예인 씨(26)는 지난 2월 대통령선거 기간 중 여론조사 전화를 두 번 받았다. 모두 20초가 되지 않아 끊었다.이 씨는 ‘후후’라는 앱을 깔아 스팸 번호 발신자를 파악한다. 모든 여론조사 기관의 번호가 앱에 등록되지는 않아서 여론조사 전화를 가끔 받지만 바로 끊는다.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게 싫으면 낯선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아예 안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울 마포구의 초등학교에서 행정 사무를 본다는 그는 “가끔 모르는
양사라 씨(29)는 4월 28일 점심을 먹자마자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 수면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잠을 견딜 수 없어서다. 그는 국회 속기사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검수완박 필리버스터 속기록을 보완했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진이 빠졌다.“요즘 같은 봄에 미친 듯이 키보드 두드리면 아득하게 졸려요. 오늘은 ‘밥 빨리 먹고 수면실에서 자야지’ 생각하면서 출근했어요. 저녁까지 일은 해야 하니까요.” 그는 보통 오전 상임위원회에서 약 4만 자, 오후 본회의에서 약 10만 자를 친다.국회 수면실은 본청, 소통관, 의원회관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는 세 가지 유형의 화장실이 있다.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그리고 모두의 화장실.‘모두의 화장실’ 입구 표지판에는 픽토그램(그림문자) 6개가 그려졌다. 남성, 여성, 유아, 유아의 기저귀를 가는 사람, 휠체어를 탄 장애인, 치마와 바지를 반반씩 입은 사람 모양.모두의 화장실은 성별이나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이용하는 성중립화장실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가 3월 16일부터 설치했다. 성소수자가 마음 놓고 쓰는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생겼다. 이성 보호자와 함께 다니는 유아, 장애인, 노인도
거리에는 붉은색 중국어 간판이 가득하고 중국 노래와 중국어가 흘러넘친다. 한국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2월 18일 찾았다.차이나타운은 서울지하철 2호선 대림역 12번 출구부터 대림중앙시장에 이르는 상가에 있다. 입구에서 200m 정도 걸었을까. 가게 20여 곳 중 5곳만 한국어 간판을 달았다. 나머지는 안내문과 제품명을 중국어로 표기했다.대림중앙시장을 벗어나 대동초등학교 부근에 갔다. 정문이 있는 대림로21길의 피아노 학원, 문구점, 옷가게는 간판이 모두 한글이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베어베터 본사를 찾았다. 3월 16일이었다. 건물 8층의 직원 휴게실에 10명 남짓한 직원이 모여 있었다.한쪽 벽에 ‘베어베터 직원의 약속’ 포스터가 보였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일을 할 때는 팀에서 안내하는 순서와 방법을 지키며 일합니다. 직장인으로서 예절을 지킵니다.”베어베터 직원 340여 명 중에서 240명은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은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한다.베어베터는 2012년 5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제이앤조이’라는 인쇄소로 시작했다. 지금은 인쇄, 제과, 화훼, 배송
“어디 가서 뭘 배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에 우울감과 고립감을 느낍니다.”강원 화천에 사는 김주현 씨(가명·26)는 3년 전 병무청 병역판정검사에서 경계선지능(4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장기대기 상태로 병역 면제가 유력하다.그는 요즘 집에만 머무른다. 최근에는 제과제빵 기능사를 알아봤다. 서울까지 가서 학원에 등록했는데 이틀 만에 그만뒀다. 수업 내용이 어렵고 집중력이 부족해서다.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지난해에는 컴퓨터활용능력 1급 시험에 도전했다. 필기를 통과했어도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던
코로나 19로 텅 빈 이화여대 근처의 건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도 항상 붐비는 곳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신촌기차역 공영주차장에 있는 임시선별검사소.원래는 2020년 12월 15일부터 2021년 1월 17일까지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멈추지 않아 서대문구는 진료소를 계속 운영했다.처음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운영했지만 거리두기 4단계 시행 이후인 7월 17일부터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토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서울과 지역 사이의 여가생활 인프라 격차다.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독립서점, 공연예술, 전시회 숫자가 크게 차이 난다. 아예 날을 잡고 서울에 문화생활을 즐기러 오는 지방 청년이 늘어날 정도다. 여가생활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 특히 요즘 청년은 일하는 시간 외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 계발, 가치관 실현을 위한 시간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동안 정부나 언론은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를 일자리 문제로만 치환했지만,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청년의 이유는 더 복잡
취업준비생 소은주 씨(26)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두 개다. 처음 만든 계정이 20대 소 씨의 모습 위주라면 나중에 만든 계정에는 곰돌이 캐릭터와 각종 굿즈가 가득하다.그는 “그림 그리는 게 즐겁고, 직접 만든 캐릭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이 가장 기쁘다”며 “작가로서의 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캐릭터가 알려지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소 씨가 나중에 만든 계정은 부캐용이다. 부캐는 부(副)캐릭터의 줄임말이다.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던 용어. 원래의 자신을 보여주는 캐릭터, 즉 ‘본(本)캐’와 별도로 나중에 새로 만든 캐릭터가
스토리오브서울 기자단의 김수아 박선정 신다혜 이세희 씨가 뉴스통신진흥회 제4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수상작 는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보호사의 문제를 다뤘다. 진흥회 동의를 받아 수상작을 게재한다. 스토리오브서울 양식에 맞추면서 표현을 일부 고쳤다. 정신질환 환자는 의료진보다 보호사를 더 많이 만난다. 경남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상은 센터장은 “보호사가 거의 24시간 환자 옆에 있다고 보시면 돼요”라고 말했다.보호사 서 모 씨(39)는 200
스토리오브서울 기자단의 김수아 박선정 신다혜 이세희 씨가 뉴스통신진흥회 제4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수상작 는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보호사의 문제를 다뤘다. 진흥회 동의를 받아 수상작을 게재한다. 스토리오브서울 양식에 맞추면서 표현을 일부 고쳤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보호사가 나타나 묶고 때렸다. 비웃는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꿈이었다. 정신질환 환자단체 ‘희망바라기’의 강돈수 대표(42)의 얘기다. 그는 2006년 정신병원에 처
“키즈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모르면 좋겠어요. 만약 알게 된다면 매일 가자고 할지 모르겠네요.”10월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연신어린이공원. 여섯 살짜리 어린이 4명이 공원을 휘저었다. 두 보호자가 벤치에 앉아 자녀들을 지켜봤다. 한 명은 유모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른 보호자는 그네를 밀어 달라는 아이의 말을 듣고 벤치와 그네를 오갔다.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창의성과 사회성을 기른다. 이런 과정에서 신체가 발달한다. 연세대 김명순 교수는 놀이를 ‘필수적으로 성장·발달되어야 하는 중요한 영역 중 하나이며, 아동의 일상에서
“우리 버스는 현금 없는 버스를 시범 운행하는 버스입니다. 교통카드를 미리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서울 송파구에서 333번 버스를 탔다. ‘현금 없는 버스’ 사업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왔다. 10월 23일이었다. 서울시는 10월 1일부터 시내버스 일부 노선에서 ‘현금 승차 폐지’ 사업을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연합뉴스에 따르면 8개 노선 버스 171대에서 현금 요금함을 없앴다. 대신 모바일 교통카드를 즉시 발급하는 QR코드를 정류장에 설치했다. 현금 이용자가 줄고, 위생 효율성 안전 측면에서 불가피하다고 서울시는 밝혔다.일부에서
대학생 박이슬 씨(22)는 11월 2일 대면 수업을 했다. 그날 오후 4시쯤 블로그에 감사일기를 적었다. 사소하지만 감사했던 일을 16가지 적었다.아침에 알맞은 시간에 일어났던 일, 2학기에 접어들어 학교에 처음 왔는데 새내기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일, 강의실이 헷갈리는데 교수가 “이슬이, 뭐 해?”라고 하셔서 안도했던 일….박 씨는 하루에 고마워할 만한 일을 골라서 적는 감사일기를 고등학생 때부터 적었다. 처음에는 혼자 봤다. 대학에 들어와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많이 공감하고 일부는 따라
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정희 씨(60‧주부) 씨는 누군가 치워버린 고양이 밥그릇을 보고 탄식했다. “참 못된 사람들이에요. 이 불쌍한 아이들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한다면 이런 행동은….”기자와 만난 10월 5일, 김 씨는 일곱 군데의 고양이 밥자리에 가서 사료를 채웠다. 고양이 밥자리는 길고양이가 먹이를 안정적으로 먹도록 캣맘이 설치한 시설을 말한다.그는 이런 활동을 올해까지 20년 정도 했다. 보람찬 순간이 많았지만 힘들었던 날도 있었다. 캣맘의 활동을 꺼리는 주민과 갈등을 겪을 때면 고양이에 대한 사회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에서 16일을 지냈다. 길면 길었지, 결코 짧았다고 할 수 없다. 먹고 자고 치료받은 모든 비용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너무 궁금했다.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병원비 청구서를 보면 1만 8540원이라는데 국가 공제를 받아 차감된 비용이다. 실제 나에게 들어간 비용은 아니라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병실 사용료부터 보자. 보건복지부가 밝힌 음압병실 하루 사용료는 대략 65만 원이다. 나는 15박 16일을 입원했다. 975만 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병실 사용료는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식사는 밥과 국, 그리고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