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아파트가 흔치 않던 시절,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집을 지켜주고 식구의 잔반처리까지 맡아줬으니 사람 입장에서야 개를 마다할 이유가 있었을까.개를 점잖게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흔해졌을 무렵 개들의 신상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마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곁에 있는 동물에게도 마음을 주기 시작했던 것 아닐까 싶다.그리고 요즘. 개를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눈총을 받는다. 개가 갖고 노는 완구(玩具)도 아닌데 무슨 완(玩) 자를 쓰냐는 거다. 애완견의 자리는 이제 반려견(伴侶犬)이 메
수은주가 영하권을 기록한 1월 31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는 이른 오후부터 한껏 멋을 부린 청소년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 추위를 견디기 위해 롱 패딩을 입었지만 여학생 대부분은 얇은 셔츠와 짧은 미니스커트, 10cm 정도의 하이힐 차림이었다.춥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느 여학생은 “어차피 안에 들어가면 덥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모두 홍대에 새로 생긴 ‘청소년 전용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10대였다. 이 클럽은 지난 1월 26일 문을 열었다. 성인클럽과 달리 음주와 흡연이 일절 금지된다. 대
방 한편에는 플라스틱 통이, 그것도 페브리즈 통만 무더기로 쌓여 있다. 맞은편 방에선 씻은 우유팩이 보인다. 그 옆방에는 상표를 뗀 유리병이 놓여 있다. 거대한 분리수거함 같은 이곳은 ‘서울새활용플라자(새활용플라자)’다. 지난해 9월, 서울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근처에 문을 열었다.새활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재활용이라는 단어를 잘못 쓴 건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영어 ‘업사이클링(upcycling)’을 순화한 우리말이다. 분리수거한 페트병은 녹여서 또 다른 페트병을 만드는 식으로 재활용된다. 하지만 페트병을 녹이면 다량의 환경호르
1월 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를 나와 걸었다. 3분 정도 걷다보니 빌딩 숲 사이 위치한 허름한 녹색 건물이 보였다. 주위의 고층 건물이 더 눈에 들어왔다. 17층짜리 국민연금 사옥이 바로 옆.8차선 도로를 낀 맞은편에는 동아일보 사옥이, 옆에는 16층짜리 통유리건물인 풍산빌딩이 서있었다. 그 뒤로 드문드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유독 낮은 층수의 녹색 건물은 마치 외딴 섬 같았다.외벽의 빛이 바랬고, 많이 벗겨졌다. 시멘트벽이 패여 철골이 드러나는 곳도 있었다. 오른쪽 외벽으로 난 철제계단은 반쯤 떨어져나
1월 31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할아버지 수십 명이 지하철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1번 출구 탑골공원 방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닮아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지팡이를 짚고, 표정 없이 뚜벅뚜벅 걷는 모습. 같은 곳을 향했지만 모두 ‘혼자’였다.종로 3가역, 탑골공원, 낙원동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일대는 고독과 소외의 공간이다. 수많은 노년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경제 활동에 전념하는 평일 낮, 그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래픽 디자이너 오근재는 이
천장에서 늘어진 여덟 개의 조명은 제각각 주황색 온기를 내뿜었다. 벽에 붙은 LED 시계는 아라비아 숫자로 새벽 ‘01:48’을 나타냈다. 빨갛고 파란 1인용 소파가 창가를 향해 나란히 놓여있었다. 앉아서 차를 마시며 하늘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마음을 안정하는 뉴에이지 음악’이 컴퓨터의 스피커를 통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두 대의 전신 안마 의자에서 안마를 받기도 했다. 의자 앞에는 머리에 착용하는 일회용 커버가 놓여 있었다. 여러 사람이 더욱 깨끗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작은 배려였다.기자가 2월 3일 새벽에 서울 마포구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는 병원, 관공서, 신문사, 은행 등 웅장한 건물들로 빼곡하다. 버스 경음기 소리를 뒤로하고 경찰박물관 옆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아까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골목길이 가로 세로로 얽히어 있는 이곳엔 식당 4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잡초과 이끼, 식당주인들이 가꾸어 놓은 화분들로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회색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낡은 시멘트 담 너머로 보이는 유리창은 세월이 입김을 불어 놓은 양 뿌옇다. 버선코 모양의 처마와 녹갈색 기와들이 덧니처럼 덧대져 있는 감색 기와지붕을 한 한옥들이 근대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성북동 외교관 사택단지를 경계 짓는 경사 너머로 북정마을이 있다. 북정마을에 가까워질 때쯤 성북03번 마을버스에서는 “경사가 가파르니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버스에 가만히 서 있기도 버거운 언덕을 오르면 ‘북정 카페’라는 간판을 건 파란색 벽의 낡은 한옥 건물 앞에 도착한다. 사람이 많을 땐 파전을 팔기도 했다는 북정 카페는 며칠 내내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었다. 주택 열 채 중 여섯 채는 노후 주택이고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달동네 북정마을. 조용한 마을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곳은 노인정뿐이었다.
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647번지 일대 봉제골목은 한산했다. 가족 단위로 운영되는 작은 봉제가게에서 ‘드르륵’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이 흘러나와 골목을 채웠다. 찾는 사람 하나 없는 골목 곳곳 빳빳한 새 간판이 눈에 띄었다.회색빛 낡은 콘크리트 건물 위에 깔끔한 글자체로 봉제가게의 이름을 적어놓은 간판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봉제골목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는 안내판도 보였다. 1996년부터 23년째 창신동에 산다는 송정헌 씨(52)는 “겉은 깨끗한 것 같아도 안을 열어보면 똑같다”고 말했다.서울시는 이곳에
서울지하철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경찰청 인권센터가 있다. 남영역 플랫폼에서도 7층짜리 검은색 이 건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이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가 고문 기관으로 악명을 떨쳤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8년부터 남영역 인근에 사는 배명환 씨(29)는 “근처에 있다는 건 알았는데, 거기(경찰청 인권센터)가 거기(남영동 대공분실)인지는 몰랐다”고 했다.경찰은 2005년 인권 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의지를 담아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센터로 조성했다. 1976년 생긴 남영동
디자인이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서울시는 국내 최초로 지하철에 ‘범죄예방디자인(CPTED)’을 도입했다. 지하철 환경계획으로 범죄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이용객을 안심시킨다는 취지였다. 2014년 말에 개통한 9호선 2단계 구간이 시범대상이 됐다. 1월 31일 오후, 기자는 이 사업의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5개 역을 찾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저게 안전구역이에요? 몰랐어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안전구역을 코앞에 두고도 알지 못했다. 범죄예방디자인의 핵심은 승강장에 설치
대학생 박보인 씨(22)는 몇 달 전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지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업체 양식을 받아보니 사진은 물론 키와 몸무게 등 신체 사이즈까지 입력해야 했던 것. 박 씨는 “어느 정도 단정한 용모를 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단기 아르바이트인데다 유니폼이 있는 곳도 아니었는데 지원서에 몸무게까지 적어야 하는 게 의아했다”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커피 전문점도, 의류 매장도, ‘사진 미부착 시 지원 불가’최근 채용 시 이력서에 사진, 학력, 출신지 등 차별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배제하고 지원자를 평
항일투쟁,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유독 국가를 위한 희생이 강조됐던 역사였다. 하지만 이들을 국가에서 인정하고 대우하기 시작한 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국가유공자다. 2017년 12월 기준 국가유공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연금 등의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대상자의 대부분이 고령이고 금전적 도움 그 이상의 서비스가 절실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갈 길이 멀다. ‘BOVIS(이하 보비스)'는 이처럼 국가유공자의 실질적 수요와 정부의 법적 보상 간 간격을 메우기 위해 출범했다
8년차 간호사 정서윤 씨(31)는 얼마 전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힘든 근무환경과 환자들의 태도 때문이다. 정 씨는 휴대폰으로 12월 일정을 꺼내보였다. 간호사 3교대에서 낮 근무를 뜻하는 ‘D(Day)’, 저녁 근무를 뜻하는 ‘E(Evening)’, 밤샘근무를 뜻하는 ‘N(Night)’로 달력이 빽빽했다. “원래는 15일 정도 오프(Off, 휴일)인 게 정상이죠. 근데 크리스마스 포함해서 9일밖에 없어요.” ‘아가씨’, ‘언니’로 부르며 하대하는 환자들의 태도도 견디기 힘들었다. 정 씨는 지난 7월 미국에 한 달 간 머물면서 이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6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89.5%가 휴가기간에 여행을 경험했다. 한국관광공사는 한국관광통계에서 올해 7월 출국한 내국인이 전년 같은 달 대비 14.5%, 1~7월 누계는 전년 같은 시기 대비 18%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사람들은 시간이 나면 여행을 계획한다. 관광객이 늘면서 선호되는 여행의 개념 또한 변화했다. 최근에는 단순 유흥이 아닌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이 인기다. 공정 여행은 그중 하나다. 임영신, 이혜영의 는 “여행하는 이와 여행자를
‘독특한 외모, 독특한 성격, 독특한 스타일, 독특한 상상력, 세상 유일무이한 당신만의 특징’국어사전에서 ‘틈’을 검색해 보면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 등 다양한 뜻이 나온다. 그 중 ‘사람 사이에 생기는 거리’인 세상의 ‘틈’을 인식하고 소통의 장이 되고자 하는 잡지가 있다. 장애인전문민간공익재단 한국장애인재단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이해를 돕고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발간하는 간행물 (이하 틈)이다. 틈이 지향하는 소통의 장이 무엇일지 알기 위해 재단 모금홍보팀에서 틈의 기획
자유분방하게 배치된 책장은 높낮이가 서로 달랐다. 안쪽에 위치한 벽면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여한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세미나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조금 다르죠?” 도서관 내부를 안내해주던 조화순(32) 사서가 말했다. 그녀는 ‘여기’가 일반적인 공공 도서관과는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료를 열람하고 대출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타 도서관과 달리, ‘여기’는 대한민국 성 평등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단순히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단계를 넘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책을 쓴 작가, 즉 한 명의 사람과 세계를 만나는 것입니다.”- p.538월 13일 저녁, 작가의 세계를 더 알아보기 위해 북티크 서교동점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의 단골 서점인 서교동 북티크는 책 읽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별도로 마련된 세미나실에선 독서모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리딩소년’이라는 필명과 감성적인 문체에 어울리게, 천성호 작가(28)는 편안하고 선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독서에세이 의 저자 천성호 씨는 1인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1인 가구 증가와 같은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서울시는 2012년 9월 '공유도시 서울'을 선언하고 여러 공유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3년부터는 주거 공간의 여유가 있는 어르신과 주거 공간이 필요한 대학생이 함께 거주하도록 돕는‘한지붕 세대공감 어르신-대학생 룸 셰어링 사업(이하 한지붕 세대공감)을 실시중이다. 한지붕 세대공감은 서울시에 있는 주택(여유 방 1개 이상)을 소유한 60세 이상 어르신, 서울시 소재 대학(원)의 학생 및 휴학생이 참여할 수 있다. 희망자는 홈페이지(http://ww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