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이 혁신의 정답처럼 얘기될 때가 많다. 학술적으로 반박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미디어 비평지에 나오는 전문가와 학자의 코멘트를 보면 비슷한 논조다. 거칠게 요약하면 퀄리티저널리즘을 통해 유료 독자를 발굴하라, 미국 유력지를 보라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필자에게 많은 조언을 했던 이가혁 JTBC 기자(전 팩트체크팀장) 역시 “미국 언론을 정답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그랬다”면서 “하지만 이곳 역시 치열한 고민이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었다”고
제20대 대선에서 언론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 성별 간 입장 차를 조명했다. ‘이대남’과 ‘이대녀’ 등 각종 젠더 관련 조어를 부각시키며, 젊은 세대의 남녀 갈등상황을 상당히 선정적으로 다뤘다. ‘2030 젠더와 대선’ 취재팀은 표면적인 갈등 양상을 같은 방식으로 묘사하기 보다 청년들의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젠더 시리즈를 기획했다.앞서 올라간 1편에서는 시민의 소리 패널단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1편의 두 번째 기사에서는 기자단이 패널단의 토론 내용 중 사실과 다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다. 대선에서 전남의 86.1%, 전북의 92.98%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찍었다. 지방선거 여론조사를 봐도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크게 앞선다. 그런데 호남에서도 민주당이 안심하지 못하는 지역이 있다. 무소속 후보가 강세인 곳. 전남 나주와 장성이 대표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나주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강인규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밖에서 민주당 윤병태 후보보다 높다. 강 후보는 민주당 소속의 시장이었으나 경선에서 배제되자 탈당했다. 장성에서는 재보궐선거를 포함해 군수 선거를 8
김재일 씨(58)는 후보 25명의 얼굴을 지나는데 30보를 걸었다. 9m 50cm. 서울 성북구 길음1동에 걸린 지방선거 벽보의 길이다. 벽보별 규격은 가로 38㎝, 세로 53㎝. 후보는 시장 5명, 구청장 2명, 시의원 2명, 구의원 9명, 교육감 7명이다. 선거를 이틀 앞둔 5월 30일 오후 6시경. 지하철 4호선 길음역 7번 출구 앞은 선거사무원으로 붐볐다. 퇴근길 유권자에게 저마다 인사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구의원 후보 노형승입니다.” 김 씨도 선거사무원 사이에서 멈췄다. “아유. 2-가, 나, 다? 많기도 많네.” 그
“투표할 때 그냥 찍었어요. 정보가 없는데 그런다고 투표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연구원은 지난 지방선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점자 선거공보물을 통해 후보자 정보를 접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점자 공보물로 모든 후보의 정보를 접할 수 없었다.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은 대통령, 지역구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도 교육감 선거 후보자의 점자 공보물 제출을 필수로 규정한다. 광역의원(시·도)과 기초의원(시·군·구)에게는 필수사항이 아니다. 제출하지 않는 후보자가 많은 이유다.
사전투표 첫날인 5월 28일, 취재팀은 목포를 출발해 오전 9시 전남 함평에 도착했다. 읍내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정광섭 씨(71)는 평생을 함평에서 살았다. 택시에 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귀가 따갑도록 “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찍으라”고 이야기한다. 대통령이 아니고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당만 보고 찍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바뀌긴 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전투표 갔다 오는 노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민주당의 오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후보 표정만 봐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전남도당은 지차남(나주) 임대현(영암) 김유성(함평) 신용운(여수) 등 기초단체장 후보 4명을 비롯해 모두 15명을 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초단체장 후보 22명을 포함해 전남에 38명을 공천했다. 취재팀은 국민의힘 타이틀을 달고 전남에서 기초단체장으로 출마한 후보자의 목소리를 5월 26~27일에 들었다. 이들이 험지에서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차남 후보의 선거사무실은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에 있다. 전북 남원 출신. 20여 년 전, 나주에 왔다. 친환경농업에 관심이 많아 곤충을 키우려 귀농했다. 그는 2
축구장의 4033배.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22배. 2018년 6월의 지방선거에서 사용한 선거 벽보(104만 부)와 선거공보(6억 4650만 부)를 바닥에 펼쳤을 때의 면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현수막은 당시 13만 8192장이 게시됐다. 10M짜리를 한 줄로 이으면 1382km.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선거 벽보와 선거공보, 현수막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플라스틱 일회용 컵 4억 개를 사용했을 때의 탄소 배출량과 같다고 밝혔다. 선거 홍보물로 배출될 온실가스양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인천 계양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가 접전 중이다. 주민 이영희 씨(77)는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재명이가 이길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안 될 것 같고. 나도 이번엔 진짜 모르겠어.” 5월 16일~24일 발표된 여론 조사 3개에서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에 있다. 나머지 2개 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범위 바깥에서 한 번씩 앞섰다. 취재팀은 5월 24일 오후 2시 인천 계양구 임학동 임학사거리를 찾았다. 두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건물 하나를
“네 번째 출마입니다. 인물 보고 뽑아주세요.” 정의당 이원영 후보의 인사말이다. 서울 용산구의회 나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는 5월 24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제2동 ‘삼성테마트상가’를 찾았다. 부동산, 동물병원, 네일숍, 세탁소…. 가게마다 들러 명함을 건넸다.이 후보는 지방선거 4수생이다. 2010년, 2014년, 2018년에 용산구의원으로 출마했지만 계속 탈락했다. 용산구 나선거구에는 후보 3명이 나왔다. 그중 2명이 당선된다.그는 2004년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정치
“안녕하십니까? 여론조사 전문기관 OOO입니다. 저희는 정치사회 분야와 관련해….”“뚜뚜….”직장인 이예인 씨(26)는 지난 2월 대통령선거 기간 중 여론조사 전화를 두 번 받았다. 모두 20초가 되지 않아 끊었다.이 씨는 ‘후후’라는 앱을 깔아 스팸 번호 발신자를 파악한다. 모든 여론조사 기관의 번호가 앱에 등록되지는 않아서 여론조사 전화를 가끔 받지만 바로 끊는다.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게 싫으면 낯선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아예 안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울 마포구의 초등학교에서 행정 사무를 본다는 그는 “가끔 모르는
사라 먼치는 나이(40세)에 비해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미국 미주리 출신으로 애리조나에서 대학을 나왔다. 이후 애리조나리퍼블릭의 스페인어 신문 ‘라보스’를 거쳐 본지 격인 애리조나리퍼블릭으로 스카우트됐다.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또 공무원으로도 일한 적이 있다. 모교인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저널리즘스쿨 강사로 근무하면서, 기사작성법 등 기초 과목을 가르치는 한편, 학생들을 데리고 브라질 올림픽 현장 취재를 나갔다. 지금은 비영리기관의 홍보컨설팅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편, 애리조나리퍼블릭에서 종합 1면 등 지면을 편집한다. 자신이 창
양사라 씨(29)는 4월 28일 점심을 먹자마자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 수면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잠을 견딜 수 없어서다. 그는 국회 속기사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검수완박 필리버스터 속기록을 보완했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진이 빠졌다.“요즘 같은 봄에 미친 듯이 키보드 두드리면 아득하게 졸려요. 오늘은 ‘밥 빨리 먹고 수면실에서 자야지’ 생각하면서 출근했어요. 저녁까지 일은 해야 하니까요.” 그는 보통 오전 상임위원회에서 약 4만 자, 오후 본회의에서 약 10만 자를 친다.국회 수면실은 본청, 소통관, 의원회관
새롭게 창립한 언론 매체에서의 일은 고되다. 전례가 없고 새로운 사람끼리 모여 손과 발을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경험이 생기기도 한다.한국에서도 종합편성채널이 생긴 10여 년 전, 개국 멤버는 새로운 방송국 설립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많이 했다. 이들에게는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파키스탄 방송기자 아넘 하니프 역시 비슷하다. 2015년 개국한 네오뉴스에서 뉴스 프로듀서로서 밤새면서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새로운 방송을 만든 경험이
모하메드 아스뮤 바 기자는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시에라리온의 앵커다. 공영방송인 시에라리온브로드캐스팅코퍼레이션(SLBC)에서 독한 질문을 많이 하면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는 시에라리온기자협회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2019년 현지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혐의 없이 경찰에 구류됐을 때나 2020년 기자들이 대통령실 경호원에게 폭력을 당했을 때도 비판하거나 기자 석방에 앞장섰다. SLBC는 2010년부터 공영방송이 됐다. 내전 이후, 유엔 등이 참여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라서다. 전에는 관영방송(시에라리온브로드캐스팅시스템‧SLBS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가 2014년 6월부터 지금까지 8년간 써온 연재 칼럼이다. ‘9988’은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을 줄인 말이다. 칼럼 제목에 맞게 보건복지 사각지대를 담는다.그는 2019년 스토리오브서울(Story of Seoul) 인터뷰에서 복지전문기자로서의 신념을 ‘긍휼지심(矜恤之心)’이라고 표현했다.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신념 덕에 그는 2021년 한국과학기자협회에서 ‘올해의 의과학취재상’을 받았다. 협회
일본의 취업난은 이제 옛말일까. 일본의 취업 빙하기는 버블 붕괴와 저성장 기조가 겹친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저출생으로 청년 인구가 줄어든 2010년대 들어 해소됐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베이비붐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년부터 1949년 출생)의 정년퇴직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점도 이 시기 기업들의 고용 여력 확대에 기여했다. 인구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취업난도 개선됐다는 것이다.앞서 1부에서는 한국의 구직난을 미국의 구인난과 비교해 소개했다. 2부에서는 마찬가지로 취업난이 해소됐다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폭동이다. 누가 일으켰느냐? 김대중 졸개하고 북한 간첩하고 함께 해서 일으켰대!”군사평론가 지만원 씨가 2020년 5월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외친 말이다. 그는 2002년 신문 광고를 시작으로 북한군 침투설을 끊임없이 주장했다.‘카더라’ 수준이던 북한군 침투설에 김명국이라는 인물이 힘을 실었다. 그는 2013년 5월 채널A에 출연해 자신이 5.18 당시 광주에 잠입한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했다.이후 지 씨는 2015년 6월부터 인터넷 사이트 ‘시스템클럽’에 관련 글을 게시하고 영상을 편
미국은 세계 최대 언론 시장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저널리즘스쿨도 여럿 있다. 이 때문에 연수나 취재차 미국을 찾은 기자가 많다.필자가 공부하는 험프리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나라 기자를 만날 수 있다. 공영방송 앵커도 있고, 팩트체크 교육자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기자가 있었지만 인터뷰에는 실패했다. 서면 인터뷰를 승낙했지만 결국 답변이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인터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필자가 만난 기자 중에 방글라데시 영자지 부장인 엘리타 카림이 있다. 방글라데시 언론계에서는 꽤 유명 인사다. 위키피디아에는 ‘가수, 저널리
앞서 소개한 롭 헤이스 교수가 미국 지역신문의 호황기를 겪은 선배 세대 기자였다면, 닉 팰선 기자는 지역신문의 변혁을 몸으로 느끼고 향후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세대다. 올해로 23년차로 리하이 밸리 라이브라는 온라인 매체의 편집국장이다.우선 이 매체의 성격과 디지털퍼스트 전략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리하이밸리라이브의 전신인 익스프레스타임스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필라델피아 북서부에 있는 ‘리하이 밸리’ 지역(이스턴, 베들레헴, 앨런타운)을 커버하는 지역 대표 일간지다. 1855년 이스턴데일리익스프레스라는 제호로 창간했다.회사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