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4월 4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구의 오피스텔. 주민이 찾아가지 않은 선거 공보물이 우체통에 꽂혀있었다. 여기에 사는 박형준 씨(24)는 “(공보물이) 저번 주 금요일에 왔는데 오늘까지 안 찾아간 건 사실상 버려진다는 거죠”라고 말했다.용산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박준호 씨(29)는 선거 쓰레기의 환경오염에 공감하며 온라인 공보물에 긍정적이었다. “‘국민비서’처럼 국가 차원에서 일방적 서비스를 해줬으면 좋겠다. 따로 신청해야 하면 번거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사는 대학생 최민정 씨(23)는
경기 북부 최전방의 육군 보병부대에는 작년 11월부터 두 달 동안 중대장 자리가 비어있었다. 원래 중대장이 전출하고 후임 인사가 없었다. 대위 보직자가 부족했기 때문.고육지책으로 선임소대장이던 중위가 대리로 임무를 수행했다. 인근 포병부대 권 모 중위(26)는 “중위는 임관한 지 대부분 5년이 안 된 초짜들”이라며 “100명 단위 중대 병력을 통솔할 경험이 부족하다”고 했다.초급간부 지원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일선 부대에서 대위가 하던 보직을 중위가 맡는 경우가 늘었다. 초급간부는 소위, 중위 그리고 부사관들로 야전부대에서 손발 역할
“아직 꽃이 다 피지 않아서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꽃이 피어야 많이 올 텐데….”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호수벚꽃축제’에서 솜사탕을 파는 신성근 씨(30)는 3월 27일 솜사탕 기계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석촌호수 벚꽃 축제는 이날 시작됐다. 가벼운 옷차림의 상춘객이 눈에 띄었다. 유아차를 끌고 온 부부, 손을 잡고 산책하는 연인,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여고생들, 강아지를 품에 안고 나온 여성 등 많은 시민이 찾았다.그런데 가장 인기 있는 사진 촬영 장소는 석촌호수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벚꽃을 찾아 호수 바깥쪽 대로변에 있는 벚
일요일이었던 3월 3일 오후 2시 경기도 의정부시 튼튼어린이병원. 점심시간이 막 끝난 후라 병원은 붐볐다. 어린 환자와 보호자 등 40여 명이 진료를 기다렸다. 어린이 환자는 대기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책을 펴고 공부했다. 일부는 수액을 맞으며 입원을 기다렸다.보통 소아청소년과 병원은 주말에 문을 닫지만 튼튼어린이병원은 열려 있다. 평일 야간이나 휴일에도 경증 소아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이기 때문이다.달빛어린이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사업이다. 병의원이 시군구에 참여를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시도가 지정
토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어느 빌딩에 청년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졸업, 취업, 친구 관계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내용이 조금 달랐다.누군가 같은 이야기를 10분 넘게 계속하자, 다른 청년이 “이 얘기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됐다. 다른 청년은 대학에 합격한 이야기를 반복했고, 또 다른 청년은 ‘내 생일이 곧 다가오는데 나이를 먹어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5분마다 되풀이했다.이들은 느린학습자시민회에서 주최하는 3월 청년 모임 참가자. 모두 ‘경계성 지능인’이다. 대부분 지능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89.7%)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10명 중 6명(64%)은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했다.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2월 6일 결정했다. 여기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했지만 정부는 대학별 정원을 3월 20일 발표했다.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시민 생각이 궁금했다. 찬성과 반대를 넘어 의료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토론에 참여할 시민
기후동행카드가 출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실물 카드를 구하지 못한 시민이 여전히 많다. 서울시가 물량을 더 풀었지만 중고 사이트에선 가격을 올린 카드를 파는 중이다.“웃돈 주고 살까도 고민해봤어요.” 기후동행카드를 아직 구매하지 못한 취업준비생 박성영 씨(26)의 말이다.그는 2월 27일 오후 2시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 고객안전실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사려고 했다. 하지만 안내문을 보니 없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9시경 지하철 7호선 공릉역에 있는 편의점에 갔지만 여기서도 못 구했다.기후동행카드는 서울시가 전국에서 처음 선보인
“여기 있는 모두가 활기차 보이는 게 흥미로워요.” 3월 1일 서울 서대문구의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독일인 교환학생 샤이엔 씨(22)의 말이다.영하 8도로 기온이 떨어졌지만 관람 시작 시각(오전 9시)부터 시민 발길이 늘었다. 15분 만에 입장 대기 줄이 생겼다. 가족 단위의 시민이 가장 많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손바닥만한 태극기를 들었다.“엄마, 저거 뜨거운 물이야?”“뜨거운 물은 아니겠지, 설마.”“뜨거운 물이에요.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가면서 부었어요.”물고문을 재현한 현장에서는 관람객끼리 서로 설명해 주는 모습도 보였다.
늘봄학교가 3월 4일 시작했다. 정규수업 외의 종합 교육프로그램으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와 돌봄을 통합해 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돌본다.교육부는 “전국 2700여 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운영하며,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 머물 수 있다”라고 2월 4일 발표했다.2학기에는 전국 초등학교 1학년 학생 모두를 돌본다.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학생·학부모·교원 모두 만족하는 늘봄학교를 만들겠다”라고 강조했다.교사들은 업무가 늘어난다고 호소했다. 2월 17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아파트. 2월 28일, 한낮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1월 14층 한 세대에서 불이 나 주민 95명이 대피했던 곳이다. 입주민이 이웃을 빨리 대피시켜 인명 피해를 막았지만 방화문이 닫혀 있지 않아 연기가 급속도로 퍼졌다.지금은 어떨까. 불이 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파트 15개 층에서 방화문이 닫힌 곳은 5개 층에 불과했다. 같은 아파트 나머지 4개 동은 모든 층의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화재 시 유독가스 확산을 막아야 하지만 많은 주민이 방화문을 열어 놓거나 물건을 복도에 쌓아뒀다.이곳은 장애인과 고
해시태그(#)라는 기호가 있다. SNS 사용자라면 대부분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샵’, ‘우물 정(井)’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면 SNS 트렌드에 아직 익숙하지 않을지 모른다.SNS에 익숙하지 않은데도 구독자 63만 명을 보유한 대형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해시태그’보다 ‘우물 정(井)’이 익숙하면 더욱 그렇다. ‘충주시 홍보맨’으로 이름을 알린 김선태 주무관 이야기다.경기도 광명 AK플라자에서 3월 5일 열린 민생토론회 사전 행사에서 김 주무관은 청년보좌역, 2030자문단 등 청년 400여 명에
경기 수원에서 친모가 영아 2명을 살해하고 냉동고에 은닉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지난해 6월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에 나섰다.미등록 아동은 ‘그림자 아기’ 또는 ‘유령 아동’이라 불린다. 병원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영유아다.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변화를 겪은 곳이 있다. 베이비박스.국내에 2곳이 있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그중 하나를 운영한다. 여기에 가려면 교회와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오르막길을 5분 이상 올라야 한다.주사랑공동체교회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
“보세요, 누가 암경험자고 누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나요?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고 누구나 회복해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어요.”서울 중랑구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홍유진 캔프협동조합(캔프·Can.F)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19일이었다. 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그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캔프를 만든 암경험자 8명과 가족의 모습이었다. 국내 암유병자는 약 247만 명. 그중 72.1%가 암에 걸리고 5년 이상 생존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21년 국가암등록통계’의 수치다. 국가암등록통계
“기르던 강아지가 죽고 마음이 헛헛해서 경마장에 오기 시작했어. 그게 벌써 4년이나 됐네.”송이남 씨(73)는 매주 금·토·일요일마다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서울’ 경마장(과천 경마장)을 찾는다. 의지하던 강아지 뽀삐가 노환으로 죽은 뒤, 경마장이 유일한 낙(樂)이다.그는 ‘늙은 사람들’이나 경마장에 취미를 들인다고 말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행산업인 경마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2023년 12월 23일 과천 경마장을 갔다.이용객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휴대전화로 말 경기 이력을 검색하면서 마권 구매표에 컴퓨터 사인펜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주민들이 커피를 손에 쥐고 이야기하고 반려견과 공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주민 이순영 씨(62)는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갈 만한 공원도 없는데, 다 부수면 폐허처럼 동네만 무서워질까 걱정이야.”플래카드에는 ‘혁신파크의 새로운 변화,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라!’, ‘상업 개발 반대! 공공의 공간으로 유지하라!’라는 문구가 보였다.혁신파크는 총면적 11만㎡. 광장과 운동기구가 있는 공원, 그리고 건물 14동과 카페가 있다. 사회혁신 생태계 조성과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만든 복합
“한 움큼씩 싣고 와요. 아기 자동차 같은 거나 자전거로 싣고 오기도 하고…. 빈 수거기를 찾아서 멀리서도 오던걸?”12월 5일 낮 12시 50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13호점 ‘노량진 폭탄밥’을 운영하는 하애경 씨(59)가 4500원짜리 컵밥 재료를 뒤적이며 말했다.하 씨가 말한 수거기는 재활용품 무인 회수기 ‘네프론’이다. 빈 음료캔이나 페트병을 넣으면 하나당 10포인트를 받는다. 1포인트는 현금 1원으로, 2000포인트를 넘기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재활용품은 업체가 수거해 재생 소재로 바꾸는데 활용한다.이렇게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는 연말마다 ‘볼 드롭(ball drop)’ 행사가 열린다. 타임스퀘어에만 5만 명 넘게 몰린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뉴욕 경찰이 매뉴얼에 따라 군중 이동과 출입을 조절하기 때문이다.홍콩은 1993년 란콰이퐁 거리에서 21명이 숨지는 사고를 겪고 해마다 핼러윈 축제가 다가오면 인파 통제에 나선다. 일부 도로를 폐쇄하고 응급 상황에서 사용할 비상로를 확보한다.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택한 건 하드웨어 정비였다. 지난해 12월 25개 자치구에 다중인파 밀집 사고를 막는다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21개 구는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겠다며 인파 시뮬레이션을 했다. 다중인파 밀집지역 안전사고를 예방하라며 서울시가 보낸 특별조정교부금 13억2700만 원이 들어갔다.인파 시뮬레이션은 지형 특성과 보행량을 고려해 위험 구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다. 어디가 압사 등 사고 위험이 많은지 특정할 수 있고, 어떤 예방 조치가 필요한지도 알 수 있다.그런데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이 정보공개청구 등으로 확인했더니 인파 시뮬레이션 용역이 끝나기 전에 도로나 도로시설물 정비 등 보행환경개선사업을 마무리한 곳이 7개
“오빠가 너무 심하게 때리니까 거실에 있는 엄마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친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저를 방관한 게 너무 상처였죠. 학대가 점점 심해지니 이대로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예은 씨(25)는 9년 전 집을 나왔다. 당시 16살이었다. 가정폭력이 원인이었다. 부모가 이혼하고 오빠가 생계를 책임지면서 김 씨에게 훈계하며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다.집을 떠나 혼자 자취하기로 어머니와 합의하고 모든 경제적 책임은 김 씨의 몫이었다. 평일에는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했다.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으나 누구도
박예현 씨(28)는 인스타그램으로 소아 작업치료의 내용을 공유한다. 자신의 업무를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새 입소문이 퍼져 지금은 4000명 이상이 소아작업 치료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소아작업치료사는 발달 지연이나 자폐, 지적 장애를 겪는 아동이 일상생활에서 활동을 원활히 하도록 놀이나 운동 등 재활 치료를 돕는 직업이다. 하루 5~6시간을 쉴 틈 없이 일하기에 힘들 때가 많지만 아이들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9년차 김도진 씨는 성인 치료로 작업치료사를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밝고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며